[기자의 눈/하종대]백두산 관광객 수모와 ‘만만디’ 주중 대사관

  • 입력 2006년 8월 18일 19시 31분


“글쎄요, 그걸 누가 담당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백두산 관광길에 나선 한국인들이 중국의 국경수비대 및 공안요원들로부터 마치 범죄 용의자처럼 검문검색을 당하고 있다는 본보 보도(A1면)가 나간 17일. 베이징(北京)의 주중 한국대사관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천하태평이었다.

백두산 관광 성수기를 맞아 많게는 하루 5000명에 이르는 한국인들이 백두산으로 향했다가 소지품은 물론 가방의 짐까지 하나하나 꺼내 보여야 하는 수모를 당했지만 주중 대사관은 사실 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중앙정부가 한 조치가 아니어서 말이죠. 참으로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사관은 주로 중앙 정부를 상대하기 때문에 대응은커녕 알아보기조차 힘들다는 말로 들렸다.

백두산 지역을 포함해 동북 3성을 담당하는 선양(瀋陽)의 한국 총영사관은 더욱 한심했다.

“알아보고는 있는데 아직 뭐 나오는 게 없네요.”

보도가 나간 지 만 하루가 지난 18일에도 답변은 고장 난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똑같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한국 관광객들의 수모가 3일째 이어졌지만 정작 선양 총영사관은 영사를 파견해 상황을 파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하려면 현지에 영사를 보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글쎄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잖아요.”

‘외국에 있으면서 외교부 장관과 특명전권대사·공사의 지시를 받아 자국의 무역통상이익을 도모하고 주재국에 있는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하는 공무원.’ 한 백과사전에 나오는 ‘영사’에 대한 정의다.

“자국민이 마치 테러용의자나 되는 듯 무지막지하게 소지품과 짐 검사를 당하고 있는데, 보호는커녕 이유조차 모르겠다니 도대체 말이 됩니까?”

16일 40여 명의 초등학생을 이끌고 백두산을 찾은 경기 안성시의 한 초등학교 C 교사는 분통을 터뜨렸다. 선양의 총영사관을 향해 던진 힐난이었다.

교민과 관광객들에 따르면 중국 공안과 국경수비대의 검문검색은 18일 오전을 고비로 다소 완화됐다고 한다. 그러나 책상머리에 앉아 ‘만만디 행정’을 하느라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 자국민이 수모를 당한 영문조차 모르는 영사들에 대한 원성은 계속되고 있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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