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이민의 세기

  • 입력 2006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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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은 가나야, 토고야?”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귀를 붙들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의 패스트푸드점이었다.

TV 화면에는 축구선수들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곧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였다. ‘풋.’ 지단도, 앙리의 얼굴도 몰랐던 여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 진군이다, 놈들의 더러운 피를 밭에 뿌리자….’ 혁명군은 18세기 말 이 노래를 부르며 파리로 쳐들어갔다. 저 검은 선수들의 조상은 그 대열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얼굴색은 단지 지나간 역사의 흔적일까. 그렇지 않다. 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는 아프리카판 엑소더스의 현장이다. 지난해 6월부터 1년 동안 1만1000명의 신(新)보트피플이 유럽 대륙에 상륙했고 3000여 명은 물에 빠져 숨졌다. 이와 같은 불법 입국자가 2001년부터 5년 동안 500만 명 가까이 유럽으로 유입됐다.

21세기는 세계화의 세기로 기록될까. 아마 그럴 것이다. 이미 전 지구적인 재화와 용역, 자본의 자유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마지막 남은 장벽이 바로 인적 자원의 장벽이다. 오늘도 지브롤터 해협과 미국-멕시코 국경에는 목숨을 걸고 감시망을 피해 하룻밤에 선진 세계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세계사에서 낯설기만 한 풍경은 아니다. 새로운 점이 있다면, 1000년 이상이나 민족 단위로 살아왔던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도 독립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한 소집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유럽의 모습은 한국의 선행지표가 될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선진 세계와 제3세계의 소득 차는 2.6배나 커져 130배에 이른다(독일 주간지 ‘슈피겔’). 1인당 소득 기준으로 유럽연합(EU) 상위 국가들의 절반 수준인 한국의 경제력이 선진 세계의 표준에 가까워질수록 인근 인구집단의 침투 압력은 커진다. 세계 최하위권으로 1.08이라는 낮은 출산율 역시 이들을 빨아들이는 ‘진공’을 만들어 낼 것이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최근 파리에서 일어난 이민자 폭동은 유럽 주류 사회마저 이민 문화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독일에서는 ‘공용어는 독일어로 한다’는 약속을 법령으로 제정하려는 시도가 최근 성공할 뻔했다. ‘인종주의’의 비난을 피하되 배타적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다문화 환경을 수용해 본 경험이 일천한 한국에서 예상되는 갈등은 더더욱 크다. 절반의 한국인 하인스 워드의 성공과 함께 마치 그동안 없던 듯 떠오른 혼혈인 차별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인종적 관용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다. 심지어 지역 간 갈등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 아니었던가.

준비할 시간이 의외로 부족할 수도 있다. 터키 이민자의 독일 유입이 본격화된 지 고작 한 세대가 지났지만 오늘날 독일인 스무 명 중 한 사람은 터키 출신이거나 그들의 2세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대도시 일부 지역에서 ‘게토화’되어 가고 있다. 다음 세대에 서울이나 인천의 어딘가에 닥칠지도 모르는 문제다.

아 참, 독일 월드컵 대표팀의 주 공격수 포돌스키와 클로제가 폴란드 출신의 이민자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던가.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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