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0년 마오쩌둥 장남 6·25전서 사망

입력 2005-11-25 03:05수정 2009-10-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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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25일, 6·25전쟁에 참전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이 평안북도 삭주군에 주둔해 있던 중국군 지원군 사령부에서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28세의 나이로 숨졌다.

1922년생인 그는 8세 때 모친과 함께 투옥된 후 어머니가 처형되는 것을 목도한다. 이것이 복수심을 불러일으키는 동기가 되었는지 그는 이후 집요한 투쟁욕을 보인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공산당 지원하에 유학을 떠나 소련 군사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전차 저지참호를 파며 소련군을 거들었다. 그러면서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나도 싸우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답장이 없자 소련군 정치부 부주임 장군을 졸라 참전 허락을 받아냈다. 이후 소련 소년사관학교, 모스크바 레닌군사학교 등을 거쳐 중위에 임관한 후 백러시아 제1방면군 전차부대 소속으로 전쟁에 참가했다. 1945년 5월 스탈린은 마오안잉을 접견하고 기념선물을 주기도 했다.

소련에서 귀국한 마오안잉은 1950년 10월 하순, 6·25전쟁에 참전했다. 최전선에 투입된 것은 아니고 중국인민해방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비서 겸 통역이라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보직이었다. 그러나 11월 25일 늦잠을 자 끼니를 놓친 그는 미군 전투기가 사령부 건물 위를 그냥 지나치자 뭔가 먹을 걸 찾아 사령부 건물로 들어갔다가 폭격에 맞은 것으로 전해진다.

펑 사령관은 사고가 나자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즉보했지만 총리는 3개월 뒤인 1951년 1월 초에야 마오쩌둥에게 보고했다. 마오쩌둥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마오쩌둥의 아들인지 어떻게 확인했느냐”고 되물었다 한다.

마오쩌둥은 아들 셋을 두었는데 모두 파란을 겪었다. 둘째는 정신이상이 되었고 셋째는 중국 내전 와중에 실종됐다. 그리고 자신이 고집해 개입한 ‘동지(김일성)의 침략 전쟁’에서는 장남을 잃은 것이다. 마오안잉의 묘는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군 열사묘’에 있는데 지금도 중국 대표단이 방북하면 단골로 찾는 참배 장소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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