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락률은 2002년 이전 60% 선에서 이후 20%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사업주체들이 타당성을 미리 잘 검토한 결과는 아니다. 종전엔 ‘경제적 타당성’을 우선적으로 따진 반면 2003년부터는 ‘정책적 타당성’을 중시해 점수를 후하게 준 덕분이다. 2003년 이후 조사를 통과한 79건 가운데 반가량은 종전 기준으로 따졌다면 비효율적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타당성 평가 비중을 경제성 40∼50%, 정책성 25∼35%, 지역균형발전 15∼25%로 바꿨다. 비효율적인 선심성 지역사업이 이 조사를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균형발전이라는 애매한 정치적 ‘코드’ 때문에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옥석(玉石)을 가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변칙과 편법도 많았다. 조사를 슬쩍 빼먹고 일단 예산을 투입해 사업부터 벌이거나 사업비를 500억 원 이하로 잡아 조사대상에서 빠진 뒤 사업비를 2배가량으로 올리는 수법 등이 그것이다. 수차례 설계변경을 통해 사업비를 2배 이상으로 부풀린 대형 국책사업이 현재 36개로, 이렇게 늘어난 사업비만 28조 원에 이른다. 중앙정부, 지자체, 공기업 할 것 없이 혈세를 주인 없는 돈으로 여기고 ‘요령껏 먼저 빼 쓰기’ 경쟁을 벌인 셈이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예비 타당성 조사 제도를 도입했다면 비용과 산출을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감시 기능을 무력화하고 정치적 계산으로 사업을 마구 벌인다면 기공식 잔치는 화려하겠지만 국민은 그 뒷감당에 허리가 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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