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승직]안전대책 없는 발코니 구조변경 안된다

  • 입력 2005년 11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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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코니 구조변경의 합법화를 당초 예정보다도 앞당겨 시행하기로 했다. 조기 합법화의 요구가 빗발친 데서 비롯된 ‘민원 해소성’ 조치로 해석된다. 합법화 자체가 무리라고 우려하던 차에 준비도 안 된 합법화를 더 앞당기기로 했다니 혼란을 겪는 것은 자명하다. 이번 발코니 구조변경 합법화가 규제 개혁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한때는 안전을 이유로 구조 확장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가 이제 환경 개선의 차원이라고 설명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 변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처음에는 발코니 확장을 전면 허용한다고 발표했다가 안전을 우려하는 비난이 쏟아지자 허둥지둥 발코니 내 대피공간 의무화와 불길을 막을 방화판 또는 방화유리 설치 등의 안전 대책을 내놓은 것만 봐도 준비가 소홀했음을 알 수 있다.

환경 개선은 30∼50평 규모의 아파트를 기준으로 약 10평 내외의 면적을 세금 부담 없이 늘리는 것을 가리킨다. 20평형대 아파트가 30평형대로, 30평형대 아파트가 40평형대로 늘어난다니 적지 않은 면적 증가인 셈이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면적 증가 효과 이면에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발코니는 원래 서양 건축에서 편리성과 안전을 위해 발전된 하나의 건축 시스템이다. 이번 발코니 구조변경 합법화가 불러올 염려스러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화재 및 재난에 대한 안전성 문제다. 발코니는 화재 시 대피통로가 되는 한편 위층과 아래층 사이의 연기 및 화염 확산을 지연시켜 신속한 초기 대피가 가능하도록 한다. 특히 최근 화재 피해의 75%가 연기 피해임을 감안할 때,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0.6평에서 0.9평의 대피공간 확보만으로 연기 피해를 줄이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지 의문이다. 이는 다른 대안을 통해 보완하기 힘든 사항이다.

둘째, 구조 안전성에 관한 문제다. 발코니는 건축 구조상 외팔 보(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의 형태로 한쪽을 건물에 지지하는 구조이다. 구조물의 강도나 적재 하중을 감안해 설치된 것으로 칸막이벽이나 날개벽을 해체할 경우 그 구조가 약해질 수 있다. 더구나 건물 준공 후에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감리를 받을 수도 없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이다.

셋째, 발코니는 처마 역할을 하면서 자연 환경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친환경 건축 시스템이다. 특히 효과적인 일사량의 조절은 건물의 환경에 크게 기여하며 공기를 통한 층간 소음 전달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외부와의 완충 공간으로서 겨울에는 창가의 차가운 냉기 유입과 결로(이슬 맺힘)를 막아 주고, 여름에는 뜨거운 복사열을 차단해 에너지를 절약해 준다.

이번 발코니 구조변경 합법화는 제2의 편법을 불러올 수 있다. 시공상의 문제를 비롯해 분양가 상승 등이 우려되고 세금 부담 없이 건축 면적만을 늘리려는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상의 문제점들은 매우 우려되는 것들로 대안을 마련한다 해도 발코니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대신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보이는 사용 면적 증가를 위해 보이지 않는 안전 등의 문제점을 간과하면 더 큰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연을 훼손했다가 나중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 자연을 다시 살려낸 청계천 복원에서 보듯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중에 바로잡는 데 큰 비용이 들고, 또 그 일이 쉽지도 않다. 민원의 해결도 중요하겠지만 발코니라는 건축 양식이 주는 친환경적인 기능을 몇 평 안 되는 사용 면적의 증가와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 발코니의 역할과 기능의 중요성을 잘 이해시켜 그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주거환경이 개선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어떨까.

서승직 인하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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