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미술계는 지금…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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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술계에서는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의 출범이 단연 화제다. 서울옥션에 이어 K옥션이 업무를 시작하면 많은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K옥션은 9일로 예정된 첫 경매에 국내외 유명 작품 117점을 내놓았다. 김기창 박수근 천경자 김홍도 정선 등 미술 문외한도 이름을 들어 봤을 한국 작가뿐 아니라 샤갈, 피카소, 앤디 워홀 같은 외국 작가 작품까지 샘나는 것들이 즐비하다. 출품 작품의 추정가 총액이 60억∼80억 원에 달한다는 게 K옥션의 설명이다.

서울옥션도 선발 주자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분주하다. 이중섭 화백 그림 위작 시비로 곤경에 빠졌던 서울옥션은 새 대표를 영입하고 강남에 분점을 내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경매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역량 있는 감정위원을 늘린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같은 경매회사의 경쟁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거래 방식에 따라 미술품 값의 거품이 빠져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에 두 경매회사의 대주주가 대형 화랑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서울옥션은 가나아트센터, K옥션은 갤러리현대와 학고재가 대주주다. 미술계에서 이미 ‘권력’으로 통하는 대형 화랑이 경매시장까지 장악한 셈이다. 이에 따라 화랑에서의 작품 값과 경매 낙찰가 사이에 이중 가격이 생길 경우 시장이 교란된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미술품 경매가 ‘귀족 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매회사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경매 고객은 넉넉잡아야 300∼400명”이라고 말했다. 재테크 수단으로 미술품에 투자하는 부유층을 고객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K옥션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미술계 큰손들이 최근 외국 작품으로 눈길을 돌리자 이런 사람들을 겨냥해 출범을 서둔 것으로 알려졌다.

좋은 미술품이 유용한 투자 수단이긴 하다. 하지만 재테크를 위해 값비싼 미술품을 산 사람들은 작품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기보다는 수장고에 안전하게 ‘모셔 두는’ 경우가 많다. 명작을 감상하며 예술적 감흥을 맛보거나 마음의 안정을 찾는 기회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셈이다.

고가품 위주의 경매로는 미술품 소비 대중화에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 그림 한두 점은 걸려 있지만 경매에 나온 고가의 작품은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결국 많은 사람은 무명작가 작품이나 복제품 등 ‘이발소 그림’을 걸어 두는 데 만족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술협회 회원이 2만여 명에 이르고 화랑협회에 100여 개 화랑이 소속돼 있지만 미술의 대중화는 아직도 요원한 상황이다.

경매가 오히려 미술시장에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한 큐레이터는 “경매에서의 고가 낙찰이 미술품 시장에 거품을 만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신진 작가들도 작품 값을 턱없이 높게 매기는 바람에 소비자가 살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 미술가와 미술 애호가들이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특히 경매회사들은 중저가 미술품 유통 활성화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연간 2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미술시장의 파이도 커지고 미술의 대중화도 앞당겨질 것이다.

김차수 문화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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