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회계장부에 드러난 ‘파업의 그늘’

  • 입력 2005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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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남긴 성적표는 초라했다.

수출 주력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최근 기업설명회에서 공개한 3분기(7∼9월) 회계장부엔 파업의 후유증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현대차는 이 기간 영업이익이 2680억 원에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2.2%, 올해 2분기(4∼6월)와 비교하면 41.5% 줄었다. 주력 제품인 쏘나타와 그랜저의 해외 주문은 쌓여 있는데 생산량이 달려 파업 기간에 수출하지 못한 자동차는 총 4만2707대, 금액으로 5910억 원어치다.

현대차는 8월 25일부터 9월 8일까지 11일(근무 일수 기준) 동안 파업 때문에 부분적으로 공장이 멈춰 섰다. 3분기 현대차의 영업실적은 최근 2년 사이 가장 나빴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기아차 역시 파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분기 중 3조2346억 원어치를 팔았지만 이익은커녕 210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기아차가 적자를 낸 것은 부도로 쓰러지고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기아차도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2만9000대(4200억 원)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이와 별도로 비정규직 직원들의 파업 때문에 생긴 생산 차질도 1만7000대(2600억 원)에 이른다.

기아차 김득주(金得柱) 재무관리실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에서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연례 파업 행사에다 비정규직 직원 파업까지 겹쳐 조업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7, 8월 여름휴가와 9월 추석 연휴까지 겹쳐 가뜩이나 근무 일수가 줄어든 데다 노조 파업이 기업을 옥죈 셈이다.

두 회사의 3분기 성적표는 대기업 노조가 반성해야 할 점은 없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서강대 남성일(南盛日·경제학) 교수는 “대기업의 ‘독점 노조(monopoly unionism)’가 임금 상승과 실업률 증가를 부추겨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례행사로 되풀이되는 파업 때문에 이윤이라는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의 뿔 모양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고 마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대기업 노조가 범하는 것은 아닐까.

최영해 경제부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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