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정욱]‘수영장 밖 진호’에게도 관심을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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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쓴 사람은 장애인인가, 장애인이 아닌가? 아무도 안경을 썼다고 장애인이라 부르지도 않고, 장애등급을 매겨 주지도 않으니 비장애인인 것 같다. 하지만 신체기능인 시력이 약해져 생활에 불편을 겪으니 장애인인 듯도 하다. 좀 헷갈린다.

체코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김진호 군이 금, 은, 동메달을 모두 따냈다는 소식이 온 국민을 기쁘게 했다. 특히 배영 200m 경기에선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이 아닐 수 없다. 용모도 준수한 진호는 이제 완전히 스타가 되었다. 아마 한국에 돌아오면 더더욱 유명해질 것이다. 어쩌면 광고에 출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호에게 열광하고 그의 인간승리에 감동하는 이 사회에 몇 가지 물어보고 싶다. 진호가 몇 년 뒤 나이가 들어 수영을 관두면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까. 수영코치? 발달장애인(자폐증 환자)에게 수영을 배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평생 연금이 나올 텐데 무슨 걱정이냐고?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에 문의해 보니 진호에게는 연금이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연금이 지급되는 건 장애인올림픽 수상자에 한할 뿐이다. 이 대회에 참여한 것도 전적으로 진호 어머니의 개인적인 용단과 엄청난 경제적 출혈에 의해서였다. 진호네 가계에 온전히 지워졌을 교육과 훈련의 경제적 부담은 얼마나 컸을까.

인간승리의 감동이 중요하니까 먹고사는 문제는 언급하지 말라고 한다면 다른 질문을 하겠다. 잘생기고 늠름한 진호가 어느 날 당신에게 찾아와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허락할 것인가? 이것도 어려운 질문이라면 진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승진도 하고 정년퇴직하게 해 줄 기업은 있는가?

이 모든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가득한 곳이다. 유엔은 세계 인구의 10%를 장애인으로 추정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 2%도 채우지 않아 “제발 1%만이라도 고용해 달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구성원들의 편견으로 장애인들은 평생을 ‘열외자’, ‘열등자’,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어둠 속에서 신음하다 사라지기도 한다.

이제 진호 덕에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회성 관심과 잠시 냄비처럼 달아오르는 센세이셔널리즘이어선 곤란하다. 지금 이 땅의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그들이 바라는 것을 들어주어야 한다. 차별 받지 않고, 기초생활이 유지되는 삶을 그들은 살고 싶어 한다. 사회의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장애를 많이 다루고 있지만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결코 유쾌하거나 재미있지 않다. 이 사회의 소수자로 살아가는 버겁고 비참한 삶일 뿐이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밝은 곳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 할 일임을 진호의 인간승리에서 다시금 깨달았으면 좋겠다.

안경 쓴 사람을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안경이라는 보조도구만 쓰면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리가 불편한 사람도 휠체어를 사용하고 대중교통수단을 개선하면 괜찮지 않은가. 다른 장애인들도 비슷하다. 오늘 당장 지하철의 노약자 보호석에 앉지 않는 일, 장애인용 주차장에 차를 대지 않는 일, 불편한 장애인에게 뭐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묻는 일 등이 바로 이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첫 단추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고정욱 소설가·한국장애인연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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