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권효]영천주민들 “또 선거철 됐나요”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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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거가 다가오나 보네. 표가 눈앞에 있는데 무슨 소릴 못하겠노.”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장을 비롯한 여당 지도부가 22일 경북 영천시에서 농촌봉사활동을 하면서 “영천에 혁신도시를 유치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한 영천 주민의 반응이었다.

이날 문 의장은 “뼈가 으스러지는 한이 있어도…”라는 표현을 써 가며 혁신도시를 유치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영천은 4·30 국회의원 재선거 때 여야 지도부가 총출동해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열린우리당은 ‘TK 교두보 확보’를 위해, 한나라당은 ‘텃밭 사수’를 위해 치열한 ‘영천대첩’을 벌였다.

선거가 끝난 뒤 여야 지도부는 영천을 찾아 “낙선했지만 공약은 지키겠다” “영천시민이 보여 준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3개월. 지난 주말 영천공설시장(완산시장)에서 만나 본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상인들은 “몇 달 전만 해도 영천 경제를 당장 살릴 것처럼 떠들더니 뭐가 바뀌었느냐”고 반문했다. 건어물 가게를 하는 정모(43) 씨는 “유세 때 공약이 하도 많이 나와 누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후보 측이 내세워 큰 이슈가 됐던 “10조 원을 투자해 기업도시를 만들겠다”는 공약(公約)은 이미 공약(空約)이 됐다.

이런 마당에 문 의장이 다시 ‘혁신도시 유치’를 내건 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상인들만이 아니다.

경북도 관계자도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이전과 맞물려 있어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인데 여당의 책임자가 마음대로 단정해 버리는 것은 곤란하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영천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정희수(鄭熙秀) 의원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선거 당시 미래형 전원도시 건설이나 한의학 관련 대학 유치, 군수산업특구 지정 등 솔깃한 공약을 냈지만 지금까지 성사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며칠 전에야 “군사시설 인근지역 지원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게 고작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일단 유권자의 마음만 끌어 당선되면 그 후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구태(舊態)가 여전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민심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권효 사회부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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