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警-檢이 만든 ‘억울한 범인’ 孫 씨의 경우

  • 입력 2005년 6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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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자동차에 편승해 가다 교통사고로 숨진 피해자가 ‘사고 운전자’로 날조 처리된 지 9년 만에 진상이 드러났다. 당초 경찰은 살아남은 실제 운전자 양모 씨와 또 다른 동승자 김모 씨의 위증(僞證)만을 근거로 ‘죽어서 말이 없는’ 피해자 손모 씨를 운전자로 몰아 죄를 뒤집어씌웠다.

경찰은 진범과 위증자의 거짓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길에 튕겨져 나간 손 씨의 신발을 자동차 속으로 옮겨 가짜 ‘증거 사진’까지 찍어 허위보고서를 썼다. 손 씨의 아버지는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검찰에 탄원했으나 검찰은 ‘혐의가 없다’고 판정했다.

손 씨의 아버지는 변호사도 없이 혼자 ‘진짜 증거’를 수집하며 검찰청, 경찰서 그리고 법원이라는 거대한 관료조직의 벽과 막부닥쳤다. 그의 외롭고 힘겨운 투쟁이 대법원에서 ‘진실의 역전승’으로 끝나는 데는 3000여 일이 걸렸다.

경찰이 과연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할 수 있는지, 검사가 과연 ‘공익(公益)의 대변자’로 자부할 수 있는지를 묻게 하는 사건이다. 범죄를 파헤치고 정의를 세우기는커녕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지 않았는가. 1, 2심 법원도 ‘눈먼 심리’를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법의 이름으로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고 인권을 유린한 사례가 과연 이뿐인가 하는 물음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100명의 혐의자를 놓아주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범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언(法諺)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국가형벌권 행사는 엄정해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도 인권을 유린하는 법 집행을 어떻게 막을 것이며 ‘국민을 위한 수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이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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