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용관]청와대-검찰-감사원 ‘네 탓이오’

  • 입력 2005년 6월 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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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핵심 당사자인 허문석(許文錫) 씨의 출국을 방치하는 바람에….”(2일 검찰의 유전개발 투자의혹 사건 중간 수사 결과 발표)

“(감사원이) 허 씨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위를 파악해 문책해야 할 것이다.”(3일 청와대의 일일현안점검 브리핑)

“검찰이 자신들만 빠져나가고 모든 잘못을 감사원에 뒤집어씌우고 있다.”(5일 감사원 관계자)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이 추진한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의혹 사건의 진상이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책임 소재를 놓고 국가 기관들이 서로 ‘네 탓이오’만 외치고 있다.

검찰은 50여 일 동안 수사를 했음에도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에 대해 “개입 정황은 있으나 (개입) 정도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리고 감사원에 화살을 돌렸다.

이 의원과 전대월(全大月·구속) 전 하이앤드 대표의 연결고리인 허문석(기소중지) 전 한국크루드오일 대표가 외국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감사원의 감사 자료가 조사 대상자인 김세호(金世浩) 전 건설교통부 차관에게 흘러들어간 사실을 밝혀낸 것도 검찰이다.

그러자 감사원이 발끈했다.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검찰이야말로 권력의 눈치를 보며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검찰 수사에서 더 드러난 게 뭐 있느냐. 감사 초반 미국 시민권자인 허 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던 상황은 검찰이 더 잘 안다. 다른 사건에서 우리가 출국금지 요청을 했을 때 ‘감사원에서 왜 그런 것을 하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는 언제고…”라고 했다.

두 기관의 갈등을 조율해야 할 청와대의 태도도 마찬가지. 감사원의 ‘부실 감사’ 여부는 접어 두더라도 헌법상 독립기관을 향해 ‘문책’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두 달 넘게 세상을 시끄럽게 한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의혹 사건은 이처럼 국가 기관 간의 심각한 불신과 ‘책임 떠넘기기’라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남겼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애초부터 성역 없는 감사, 성역 없는 수사를 했더라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정용관 정치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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