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시청자 빠진 TV프로 개편

  • 입력 2005년 4월 24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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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이 봄철 개편을 통해 새 프로그램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방송사들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공영성 강화와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 확대를 개편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을 보고 듣는 것은 시청자에게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개편 내용을 보면 시청자보다는 지나치게 시청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호평받는 프로그램을 시청 사각 시간대로 옮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의 간부는 “프로그램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시청률”이라면서 “방송 제작자들은 시청률의 노예나 마찬가지”라고 한탄했다. 개편 때마다 공영성 강화를 강조하지만 방송사의 광고 수익과 직결된 시청률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고백이다.

23일 개편을 단행한 MBC는 정통 토크쇼를 표방한 ‘이문세의 오아시스’와 고교 동문들이 대결을 벌이는 ‘퀴즈의 힘’을 두세 달 만에 폐지했다. 그 대신 ‘든든한 공익성, 재미있는 주말’을 개편 취지로 내세우며 오락 프로그램 ‘토요일’을 신설했으나 첫 방송이 나간 뒤 홈페이지에 기존 프로그램 재탕이라는 시청자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SBS 역시 두 달이 채 안 된 ‘퀴즈쇼 최강남녀’를 없애기로 했다. 또 뉴스를 강화하겠다는 공언과 달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을 특종 보도한 ‘뉴스추적’을 오후 8시 55분에서 시청자가 적은 오후 11시대로 옮긴다.

다음 달 초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KBS는 구체적인 개편 내용을 아직 밝히지 않았다. 사측의 노조회의 불법 도청과 직원들의 공금 유용 등으로 이미지가 추락한 KBS가 이번 개편을 통해 공영방송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을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시청률이 프로그램의 존폐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예외적인 프로그램도 있다. 주요 신문 비판에 주력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KBS의 ‘미디어 포커스’와 MBC의 ‘뉴스플러스 옴니암니’는 5% 안팎의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개편 대상에서 빠졌다. 두 프로그램이 왜 살아남았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청자들의 불만이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도 이번 개편의 문제점이다.

방송위원회가 6일 발표한 ‘2004년 시청자 불만 처리 보고서’에 따르면 뉴스나 시사 토론프로그램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방송사들은 이에 대한 개선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정치적 편향이나 불공정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의 제기를 무시하는 처사는 방송의 중대한 책임 방기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빌려 쓰는 방송사들은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내용을 방송해야 한다.

기자 출신의 한 방송사 간부는 최근 “방송이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뉴스 시청률을 높여야 하는데, 일부 프로그램의 편파 시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오락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송이 언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불공정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 방송사 스스로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시청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김차수 문화부 차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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