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인, 우리는 해낼 수 있음을 보았다

  • 입력 2005년 4월 14일 21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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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벽에 부닥친 듯한 침체상황은 한국인 특유의 패기와 자신감마저 흔들리게 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이 경쟁적으로 약진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의 최근 위상은 초라하게까지 느껴진다.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내부와 과거로만 파고드는 ‘한풀이 민주주의’, 여러 분야에 확산되는 하향평준화의 함정에 점점 깊이 빠져드는 양상은 더욱 걱정스럽다.

그러나 한국인, 우리는 해낼 수 있음도 본다. 답답한 현실을 뚫고 희망의 신호들이 우리 앞에 켜지고 있음이다. 세종대 박진숙 교수팀이 도안한 안전표지판 8종이 국제표준안으로 선택된 것도 그 하나다.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새로 채택한 16종의 표지판 가운데 절반을 차지한 것으로 세계 146개국이 이를 사용하게 된다. 우수디자인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은 전쟁을 연상케 한다. 이런 경쟁 속에서 일궈낸 박 교수팀의 쾌거는 우리의 자존심을 되살려준다.

이공계 연구분야에서도 좋은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학술지들이 게재한 한국 생명공학자들의 논문 수가 5년 사이에 무려 12배나 늘었다. 경쟁국들이 바짝 긴장할 정도라고 한다. 30대 생명공학자인 백성희 서울대 교수가 암의 전이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힘겨운 연구환경 속에서 세계 최초로 규명한 것은 암 정복에 청신호를 켠 업적이다. 백 교수뿐 아니라 우리 과학도들이 신(新)물질과 의학 분야에서 괄목할 연구결과를 쏟아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디자인, 생명공학. 정보기술 분야 등에서 코리안이 보이고 있는 눈부신 활약상은 ‘디자인 한국’ ‘과학 코리아’에 대한 자부심과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연구비가 모자라 빚까지 얻어 쓰는 악조건에서 열매를 맺은 백 교수 말고도 이들이 놓인 여건은 열악하다. 작업실과 실험실에서 숱한 밤을 밝힌 이들의 땀과 노력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추는 위업을 이뤘다. 돌이켜보면 그 주역은 산업현장과 연구실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다한 두뇌들이요, 인재들이었다. 지식이 생명인 시대를 맞은 오늘날 이들은 극도로 가라앉은 사회분위기 속에서 다시 한번 ‘우리도 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이들이 꿈과 포부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국가는 과연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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