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24>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4월 5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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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진여의 목이 붉은 피를 뿜으며 떨어지는 것을 보자 한신이 문득 생각난 듯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광무군 이좌거는 어찌 되었느냐? 누가 광무군의 소식을 듣지 못했느냐?”

그러나 한군 장졸들은 아무도 이좌거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그러자 한신은 항복한 조나라 장수를 끌어오게 해 물었다.

“광무군은 어디 있었느냐? 광무군이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광무군은 성안군(成安君) 진여의 눈 밖에 나 후진(後陣) 쪽으로 돌려졌습니다. 지금은 조나라에서 오는 치중(輜重)을 살피고 있을 것입니다.”

항복한 장수가 아는 대로 대답했다. 한신이 가슴을 쓸 듯하며 장졸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광무군을 죽이지 말라! 광무군을 사로잡는 자가 있으면 내가 천금(千金)으로 그를 사겠다!”

그러고도 다시 사람을 풀어 그 말이 진중 구석구석까지 퍼지게 했다.

한신이 그곳에 진채를 세우게 하니, 여러 장수들이 목을 벤 적의 머리와 부로(부虜)들을 이끌고 대장군의 군막을 찾아 공(功)을 청했다. 한신이 그들의 공을 치하하고 상을 내리자 그들도 한신의 승리를 경하하며 물었다.

“병법에는 ‘산등성이를 오른편으로 하여 등지고, 강물과 못은 앞으로 하여 왼편에 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장군께서는 저희들에게 오히려 물을 등지는 배수진(背水陣)을 치게 하였습니다. 그래놓고 아침밥은 적을 깨뜨린 뒤에 크게 한상 잘 차려 먹자고 하시니, 저희들로서는 도무지 대장군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이기시어 말씀하신 대로 잔치를 열 수 있게 되었으니 실로 이것이 무슨 계책입니까?”

한신이 가만히 웃으며 대답했다.

“이 또한 병법에 있는 계책인데 그대들이 살펴보지 않았을 뿐이다. 병법에 ‘죽을 곳에 빠진 뒤에야 살게 할 수 있고, 망할 곳에 있어야 지켜내 남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내가 이끌고 있는 것은 평소 조련이 잘된 사졸(士卒)이 아니라, 아무런 조련도 받지 못한 시장바닥 사람들을 몰아내어 싸우게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을 죽을 땅에 두면 저마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싸우게 될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땅에 둔다면 모두 살기 위해 달아나버릴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을 등지게 함으로 달아나려야 달아날 수 없는 죽을 땅에 있게 했을 뿐이다.”

듣고 보니 절묘한 계책이었다. 손자(孫子)는 ‘구지(九地)’ 편에서 말하기를 ‘군사들은 싸움에 지면 망해 없어질 땅으로 내던져진 뒤라야 스스로를 지켜 남고, 죽을 곳에 빠뜨려진 뒤라야 힘을 다해 스스로 살아난다. 무릇 군사들이란 위태롭고 해로운 곳에 빠지게 한 뒤에야 승패를 다퉈보게 할 수 있다(投之亡地然後存 陷之死地然後生 夫衆陷於害然後能以勝敗)’라 하였는데, 한신의 배수진은 바로 그러했다. 장수들이 탄복하며 말했다.

“정말 뛰어나십니다. 저희들은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대장군께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과찬이다. 실은 나도 지난번 수수(휴水) 가에서 10만 군사를 헛되이 잃고서야 그 이치를 깨달았다.” 한신이 갑자기 숙연한 얼굴이 되어 그렇게 덧붙였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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