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네팔에서 만난 ‘박정희’

  • 입력 2005년 2월 27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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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태(柳寅泰) 의원께.

며칠 뒤 열린우리당의 소장 의원들과 함께 네팔의 안나푸르나 등반에 나선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안나푸르나에서 세속의 때를 씻고 돌아오겠다.” 기사에는 유 의원의 몇 마디 농반진반(弄半眞半)도 있었습니다.

저도 사실 얼마 전 근속휴가를 받아 네팔을 다녀왔습니다. 등반은 아니었고, 유적들과 히말라야를 잠깐 잠깐 보고 오는 여행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식견이 부족한 탓일 것입니다. 비록 먼발치에서나마 안나푸르나의 설광(雪光)을 눈에 담고, 그 영겁(永劫)의 세월을 느껴보려 했지만 저는 세속의 때를 씻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씻기는커녕 답답한 마음만 안고 돌아왔습니다.

네팔에서 저는 박정희(朴正熙)라는 이름을 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유 의원께는 정말 지긋지긋한 얘기겠지만, 저 또한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히말라야에까지 와서 그 이름을 들어야 하나…’하는 생각에 떨떠름할 뿐이었습니다.

별로 대단한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네팔은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 안팎인 가난한 나라입니다. 1990년 민주화 시위 이후 절대왕정이 폐지되고 입헌군주제하의 정당정치가 시작됐지만 정정(政情)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제가 네팔에 도착하기 이틀 전인 2월 1일엔 갸넨드라 국왕이 내각을 해산한 다음 반대파 정치인들과 지식인, 언론인들을 연금하는 친위쿠데타까지 발생했습니다. 국토의 절반 이상은 마오쩌둥(毛澤東)주의 반군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의 부패는 극에 달해 민원인이 찾아오면 아예 서랍을 열어놓고 잠시 자리를 비울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네팔에서 가장 근대화되고, 상대적으로 청렴한 집단이 군(軍)이라는 겁니다. 특히 군 장성들 사이엔 ‘박정희식 개발모델’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국왕이 역사를 되돌리는 반민주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는데도 대다수 국민은 별다른 동요 없이 ‘좀 지켜보자’는 반응이었습니다. 의아해 하는 저에게 여행가이드는 “국왕이 쿠데타와 함께 부패관료 척결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원 돌러(one dollar)”를 외치는 어린 소년들을 보면서, 2000m 높이의 산비탈에서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일구며 살아가는 농촌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 밭뙈기마저 우기에 큰비가 내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솔직히 갸넨드라 국왕의 쿠데타가 메이지(明治)유신처럼 성공하길 빌었습니다. 동시에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박정희시대에 대한 평가는 괄호 속에 유폐시키고, 몰(沒) 역사의 자괴(自愧)를 안은 채 그냥 어정쩡한 동거를 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역사는 그저 도도(滔滔)할 뿐인데 제가 공허한 먹물티를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나푸르나에서 세속의 때를 벗고 돌아오시면 유 의원의 여행 후기를 한번 듣고 싶습니다. 소주는 없더라도….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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