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세정]‘가고 싶은 군대’ 만들어야

  • 입력 2005년 1월 30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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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해 왔다. 이런 생각은 돈깨나 있고 힘 가진 사람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투영됐다. 조선시대 이래 계속된 현상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결속과 통합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의 하나다.

왜 이렇게 군에 가기를 싫어하는가? 근본적으로 우리 군대의 전근대적 복무 여건 때문이다. 좁은 내무반에서 사생활의 보장 없이 10여 명이 부대끼는 일이나 높게 쳐진 물리적 심리적 담장, 상급자의 가혹행위 등이 그러하다. 개명한 국가의 군에서 상급자에게 구타당하는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최근의 인분 사건도 기막힌 일이지만 이것이 한국 군대의 현실이다. 서구를 기준으로 1세기 이상 뒤진 여건이다.

이제 우리도 ‘가고 싶은 군대’로 바꿀 때가 됐다. 이는 징집제를 택한 선진사회의 전략이다. 이런 나라엔 군대 문제에 따른 갈등과 부조리가 별로 없다. 또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면 대개 받아들여져 대체복무를 하는데, 복무 여건이 열악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군 개혁과 관련해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사병들을 보는 시각이다. 군의 젊은이들도 담장 밖의 사람들과 똑같은 인격체에다 사회적 정신적 욕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들이 계속 성숙하고 사회적 욕구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병영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자면 병영생활에서 공사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예컨대 업무시간 이외엔 개인 시간을 보장해 줘야 한다. 또 개인적인 일은 계급에 관계없이 스스로 하고 하급자에게 심부름 시키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장교들도 사병을 사병(私兵) 취급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최근 제대한 제자들 얘기를 들어 보면, 병사들에게 사적인 일을 시키는 관행은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나아가 내무반 개념도 바꿔야 한다. 내무반은 일과 후 휴식하고 취침하는 장소일 뿐이다. 나머지 시간엔 취미생활 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론 부대 담장을 낮춰 능력 계발을 위해 영외의 학원에 다니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귀대시간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탈영을 걱정하지만 이는 군 생활이 억압적이고 통제 지향적일 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둘째, 최소한의 문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게 급여를 현실화해야 한다. 유럽의 경우 징집제 국가에서도 사병 급여는 근로자의 3분의 1∼5분의 1 수준은 된다. 국민소득 차를 고려해도 우리나라 사병들이 받는 3만∼4만 원은 낯 뜨거운 수준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그러나 군 구조의 현대화를 통해 병력을 소수 정예화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낭비되어 온 군 예산을 절약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는 사병들의 병영 여건 개선에는 돈보다 지도층의 가치체계가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우리 군대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앞으론 ‘군에 끌려간다’는 생각을 없애야 하고, 자식이 군에 갈 때 눈물 흘리는 장면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제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군 복무는 시간낭비’라는 정서도 없애야 한다. 그 전제는 군 구조개혁이다. 구조개혁은 사병의 보수 현실화를 가능하게 하고, ‘군대생활은 사회에 나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뿌리 깊은 생각도 바꿀 수 있다.

박세정 계명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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