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낮 대구 시내 식당에 들어간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저니맨’ 최익성(32). 여느 때처럼 혼자 식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시켰지만 그가 메뉴를 부를 때마다 주인은 모두 “2인분 이상 시켜야 하는 메뉴”라며 고개를 저었다.
최익성은 “1인분이라도 해 달라”고 우겨 낙지볶음을 시켰지만 입에선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휴, 언제까지 혼자 밥을 먹어야 하나.’
● 두산 롯데 빼고 다 뛰어봐
최익성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이 팀을 옮긴 선수다. 야구뿐 아니라 국내 스포츠를 통틀어도 그처럼 이적을 많이 한 선수는 없다.
삼성-한화-LG-해태(기아)-현대에 이어 올해 삼성으로 되돌아갔다가 방출된 그는 7일 SK와 연봉 5000만 원에 계약했다. 동봉철 이광길 이동수 등 다섯 번 이적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여섯 번 이적한 건 최익성이 처음. 그가 뛰지 않은 팀은 두산과 롯데뿐이다.
● 프로구단서 세 번 잘린 셈
경주고-계명대 출신의 최익성은 다른 선수들과 달리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1994년 삼성에 계약금 없이 연봉 1200만 원짜리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지난해엔 현대에서, 올해엔 삼성에서 방출당했다. 최익성은 “프로구단으로부터 지명받지 못한 것과 두 번 방출된 걸 합하면 세 번 잘린 셈”이라고 말했다.
● 1997년엔 20-20 클럽 가입
1997년과 1998년은 최익성의 전성기. 특히 1997년엔 22홈런 33도루로 ‘20(홈런)-20(도루)클럽’에도 가입하는 등 호타준족의 선수로 주목받았다. 일발 장타에 발이 빠른 데다 외야수로 어깨도 강해 팀 공헌도가 높았다.
1999년 노장진과 맞바뀌어 한화로 트레이드된 걸 시작으로 최익성의 ‘유랑생활’은 시작됐다. 2000년 LG, 2001년 해태(기아), 2002년 현대 등 매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자신이 트레이드 대상으로 자주 떠오른 점에 대해 최익성은 “난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니다. 틀린 걸 맞다고 하질 않는다. 그런 강한 성격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 만족감 들 때까지 할거야
“프로에 들어와 10년 넘게 운동하는 동안 경기에 나간 것보다 2군에서 보낸 세월이 더 많습니다. 2군 훈련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반 미친 사람이 됩니다. 벽을 보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TV만 봐요. 해마다 낯선 도시를 돌며 홀로 생활하다 보니 친구도 못 사귀고 여자친구는 더더욱 사귈 여유가 없었습니다. 매년 이사하는 건 참을 만한데 외로운 건 참기 힘들어요. 팀을 옮길 때마다 코치들이 그럽니다. ‘타격 폼을 바꿔야 한다고.’ 그런데 왜 못 바꾸는지 아세요? 내가 그 팀에 몇 년씩 있을 수 있으면 바꾸죠. 하지만 난 몇 경기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선수입니다. 1군에서 몇 번 못 치면 바로 2군으로 쫓겨나니 나만의 타격 폼으로 성적을 내야 하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비록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만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느낄 때까지 야구를 하는 겁니다. SK에서 다시 잘리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또 다른 곳으로 가야지요….”
최익성 연도별 소속팀과 성적 | ||
연도 | 팀 | 성적 |
1994년 | 삼성 | 1경기 타율 0.000 |
1995년 | 삼성 | 3경기 타율 0.000 |
1996년 | 삼성 | 57경기 타율 0.252 4홈런 16타점 3도루 |
1997년 | 삼성 | 122경기 타율 0.296 22홈런 65타점 33도루 |
1998년 | 삼성 | 110경기 타율 0.262 13홈런 42타점 20도루 |
1999년 | 한화 | 68경기 타율 0.288 9홈런 26타점 11도루 |
2000년 | LG | 64경기 타율 0.257 2홈런 30타점 7도루 |
2001년 | 해태→기아 | 60경기 타율 0.252 4홈런 9타점 6도루 |
2002년 | 기아→현대 | 45경기 타율 0.280 1홈런 8타점 2도루 |
2003년 | 현대 | 33경기 타율 0.191 1홈런 5타점 0도루 |
2004년 | 삼성 | 18경기 타율 0.125 0홈런 3타점 0도루 |
통산 | 581경기 타율 0.269 56홈런 204타점 82도루 |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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