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9년 남극조약 체결

  • 입력 2004년 11월 30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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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물개나 펭귄은 더러 잡아먹습니까?”

숱한 말실수로 유명한 전직 대통령이 남극 세종기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한 말이다. 사실 이는 ‘큰일 날 소리’다. 남극은 ‘주인 없는 땅’이면서도 ‘지구촌법’이 추상같은 곳. 펭귄을 잡아먹었다가는 쫓겨날 게 뻔하다.

남극의 소유권을 주장한 나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최강국이던 영국, 지리적으로 가까운 칠레와 호주, 최초로 남극점을 밟은 아문센의 모국인 노르웨이 등이 신경전을 벌였다.

분쟁의 전환점은 과학자들이 마련했다. 1957년 ‘국제 지구물리의 해’를 맞아 67개국 5000여명의 학자들이 ‘최신 연구대상’인 남극에 모인 것. 이들이 1년반 동안 수행한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중국과 인도를 합친 넓이인 남극대륙은 지구 담수량의 68%를 품고 있었고 석유와 광물자원도 넘쳐났다. 즉 남극은 누군가 독차지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보물창고’였던 것이다.

결국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남극을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삼는 협정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1959년 12월 1일 선진 12개국은 △남극의 평화적 이용 △과학 탐사의 자유 △영유권 동결 △핵실험 금지 등을 규정한 ‘남극조약’을 체결했다. 현재 총 45개국이 이 조약에 가입돼 있으며 한국은 1986년 33번째로 가입했다.

이후 빙하가 녹아내리는 환경문제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1991년 각국의 행동지침을 규정한 ‘마드리드 의정서’가 채택됐다. 50년간 광물자원 이용을 금지했고 생태계 보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극지 탐험의 상징이던 ‘썰매개’도 토종 생물에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이유로 추방됐다.

현재 남극을 보는 지구촌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끝까지 사수해야 할 보물창고라 말하면서 언젠가 그 문이 활짝 열릴 날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경쟁적으로 기지를 세우면서 영역 다툼에 대비하고 있는 것.

한국도 1988년 세종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숟가락 하나는 얹어놓았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다수의 첨단기지를 세운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 학문적으로도 남극의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한 연구가 경쟁국들보다 미흡하다고 하니 ‘곳간 개방’ 때 기 싸움에서 밀릴까 걱정이다.

김준석기자 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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