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채청 칼럼]“요즘 헌법 잘 계시는가”

  • 입력 2004년 11월 23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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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는 곧잘 부딪쳤다. 우남은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사법부에 불만이 많았다. “법관들이 세계에 없는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고도 했고 “재판관들의 무제한한 자유권은 대단히 위험하다”고도 했다. 가인이 이를 막아냈다. “폭군적인 집권자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사법부 독립뿐이다”며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 깍듯이 예우를 했다. 우남이 법무부 장관에게 “요즘 헌법 잘 계시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법무부 장관이 말을 못 알아듣자 우남은 재차 “대법원에 헌법 한 분 계시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시 헌법재판 기능은 대법원에 있지 않았지만 우남이 말한 ‘헌법’은 가인이었다. 권력의 심기가 상해도 표현이 은근하던 시절의 일화가 새삼스럽다.

▼모질고 사나운 헌법논쟁▼

헌법재판제도를 최초로 확립한 미국이야말로 연방대법원사를 곧 정치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헌법재판과 정치상황은 바로 얽혀 있다. 안경환 서울대 교수(법학)의 역서 ‘법은 누구 편인가’(러셀 W 갤로웨이 저)를 보면 미 연방헌법의 탄생부터가 역동적인 현실정치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미 연방헌법은 당초 사유재산권이 정부에 선행한다는 것을 선언한 ‘경제문서’였다. 따라서 부유한 연방주의자들이 주도한 연방헌법 제정에 대중민주주의자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이 같은 두 갈래 흐름이 교차하면서 이후 200여년 동안 미국 정치와 연방대법원의 보수와 진보를 결정해왔다.

오랜 기간 쟁점은 사실상 하나였다. 재산권 행사와 기업 활동의 자유에 대한 제한 여부, 즉 경제규제에 관한 것이었다. ‘다만 역사는 법원이 진보주의보다는 보수주의 경향으로 쉽게 기울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게 이 책의 총평이다.

미국도 행정부와 연방대법원의 성향이 다를 경우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바꾸려는 행정부의 집요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두 가지가 그것을 무산시키거나 변화의 속도를 늦춰 정치적 충격을 완화했다. 하나는 연방대법관의 종신제였고 다른 하나는 대법관 개개인의 헌법적 소신이었다.

한국 역시 어렵게 초석을 놓았지만 잇단 헌정 중단으로 아직 성년을 넘긴 헌법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가장 장수한 현행 헌법은 만 17세. 하지만 성년식을 앞당기려는지 올해 우리사회를 결산하는 단어 중 하나는 ‘헌법’이 될 게 틀림없다.

대통령 탄핵소추와 수도이전 헌법소원을 둘러싼 헌법논쟁이 거리로까지 뛰쳐나와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권이 쫓기듯이 몰아붙이고 있는 이른바 4대 법안에 대한 야당의 ‘위헌투쟁’을 계기로 헌법논쟁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서다. 논쟁의 본질은 미국과 다르지 않다.

어찌 되든 이제까지 헌법논쟁은 너무 모질고 사나웠다. 그 와중에 헌법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가 불의의 수난을 겪었다. 여당 의원들이 수도이전 위헌결정은 ‘사법쿠데타’, 거기에 적용한 논리는 ‘히틀러이론’, 헌법재판소는 ‘헌법제작소’, 헌법재판관은 ‘법복 귀족’이라는 식의 공격을 주도했다.

▼비판의 한계를 벗어났다▼

그들의 폭언엔 건강한 비판의 한계를 벗어난 원색의 적의가 번뜩인다. 그래서야 우리 사회에서 법의 권위가 설 리 없다.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리 없지 않은가. 권위주의 시절의 유산인 법정 소란이 다시 잦아졌다는 보도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은 ‘헌법이 잘 계시는지’ 안부를 묻는 사람조차 기대할 수 없다.

정권은 갈려도 헌법은 갈리지 않을 텐데 내일을 잊은 듯이 막가는 헌법논쟁이 불안하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민주적 헌정 경험이 일천할 뿐만 아니라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들을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미흡해 더욱 그렇다. 취약한 구조 하에서 사회질서의 변화를 지나치게 급하게 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위태롭다.

임채청 편집국 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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