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천광암/출산율 1.19

  • 입력 2004년 8월 26일 19시 07분


코멘트
토머스 맬서스가 1798년 출판한 ‘인구론’은 당시 유럽의 지식인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맬서스는 간결한 논리로 ‘인구수가 국력이자 행복의 척도’라고 본 유럽 지식인들의 상식을 뿌리째 뒤엎었다. 맬서스의 예언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대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암울한 내용이었다. 인구는 ‘1, 2, 4, 8, 16, 32…’ 식의 기하급수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1, 2, 3, 4, 5, 6…’ 식의 산술급수로 늘어난다는 논리 앞에 대부분의 낙관론자는 백기를 들었다.

▷맬서스의 이론은 사후 많은 경제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카를 마르크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인지 마르크스의 후예인 마오쩌둥은 정권을 잡자 반(反)맬서스적인 인구정책을 폈다. 마오쩌둥의 논리는 맬서스보다 훨씬 간명한 ‘수학’이었다. 먹는 입은 하나지만, 일하는 손은 두 개이기 때문에 인구가 많을수록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중국도 인구 폭발의 부작용을 깨닫고 산아제한정책으로 돌아섰지만 1949년 6억명이던 중국의 인구는 46년 만에 곱절로 늘었다.

▷양상은 반대지만 앞을 못 보기는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1960년대 가족계획 표어는 부부 한 쌍이 자녀를 다섯 명도 넘게 낳던 시대이니 시비 대상은 아니다. ‘둘도 많다’, ‘여보! 우리도 하나만 낳읍시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등의 표어가 전국의 전봇대와 담을 도배했던 게 1980년대다. 표어가 먹혀들었던 것일까. 재작년과 작년 출산율이 1.17과 1.19라니 한 자녀 시대는 열린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낮은 출산율 때문에 큰일 났다고 야단이다. 물론 지나치게 낮은 출산율이 경제성장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이 경험적, 이론적으로 입증된 이상 출산장려정책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개운치 않은 까닭은 정부가 이번에는 인구 문제의 양면을 충분히 살펴 장기계획을 세웠는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좁은 땅 문제는 어떻게 풀 건지, 일자리 걱정은 없는지, 국민은 설명을 원한다. 국민에게만 ‘가족계획’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정부도 길게 보고 ‘계획’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