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기현/스탈린그라드

  • 입력 2004년 8월 4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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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을 꼽으라면 흔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떠올린다. 하지만 역사학자 중에는 2차 대전의 최대 승부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꼽는 이들이 많다. 1942년 8월 나치 독일군은 볼가강 하류의 전략요충지인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기 위해 총공세를 폈다. 그러나 독일군은 6개월 동안의 사투 끝에 22만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참패했다. 전세가 연합군쪽으로 역전되면서 2차 대전의 승패가 갈리는 순간이었다.

▷당시 폐허 속에서 벌인 사상 최악의 시가전은 대작 영화 ‘스탈린그라드’와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등의 소재가 됐다. 스탈린그라드는 ‘스탈린의 도시’라는 뜻. 이 전투는 양측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와 스탈린이 벌인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은 그 후 지도에서 사라졌다. 스탈린 사후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도시 이름이 볼고그라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크렘린 옆에는 2차 대전 당시 최대 격전지의 이름이 새겨진 10개의 비석이 있다. 여기에도 볼고그라드라는 새 이름만 눈에 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이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다시 스탈린그라드로 고치라고 지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역사책을 탐독할 정도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지만 평소 ‘옛날 얘기’는 입에 잘 올리지 않는다. 그런 그가 ‘사소한’ 지명 복원에까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도 청산이 아니라 포용해야 할 역사’라는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의 전임자였던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은 자신도 옛 소련체제의 특권계층이었으면서도 집권 후 개혁을 내세우며 과거의 흔적은 뭐든지 없애려고 했다. 국민들은 옐친 정부 초기에는 이런 ‘파괴적인’ 과거 청산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경제파탄과 극심한 사회혼란 속에서 임기도 못 채우고 하야했다. 오늘날 ‘옐친 시대’는 “소련체제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는 싸늘한 평가를 받고 있을 뿐이다. 우리 현대사를 재검토하겠다고 나선 집권세력이 ‘스탈린이 밉다고 스탈린그라드를 역사에서 지우는’ 식의 발상만은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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