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검은돈 정치' 끝장냅시다

입력 2003-12-09 18:51수정 2009-10-1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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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얘기만 나오면 피곤해 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정치권의 수없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어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가 정치개혁안을 마련한 것을 두고도 그런 분위기가 읽혀진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야 한다.

‘돈 정치’ 추방이 핵심인 정개협의 정치개혁안은 대체로 옳은 방향이다. 잘만 운용된다면 후진적 정치 토양을 바꾸는 데 상당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액 정치자금 기부자의 신상 공개, 일정액 이상 입출금시 예금계좌 수표 신용카드 사용 의무화 등은 정치자금 통로를 유리창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법정 지구당제도의 폐지나 예비 후보의 선거운동 보장은 돈이 많이 드는 정치구조를 바꾸고 유능한 정치 신인의 등장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른 방향이다. 선거공영제 확대, 합동연설회 및 정당연설회 폐지, 선거사범 처벌 강화 등도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고 본다.

다만 의원 정수를 현재의 273명에서 299명으로 늘리는 방안이나, 자발적 사조직의 선거운동 허용, 선거 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인하하는 방안 등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또한 제도가 갖춰져도 음성적으로 뒷돈을 챙기는 정치인이나 손 벌리는 유권자가 있다면 실효성이 없는 만큼 의식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의 의지다. 아무리 좋은 개혁안을 내놔도 여기에서 대폭 후퇴한 법을 만들면 하나마나다.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정치개혁 논의가 있었지만 정치권의 기득권과 당리당략, 현역 의원의 이해타산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에도 “선거 관행은 그대로인데 돈 들어올 길만 막아 놓으면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는 등의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 100만원 이상 기부할 때 실명 공개 조항과 관련해서는 “그러면 99만원씩만 받으면 되겠네”라고 비아냥거린다. 정개특위도 이 개혁안을 하나의 ‘참고용’으로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당간 입장이 다른 부분도 많다. 정개특위 논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처음 여야 대표의 다짐대로 정개협의 개혁안을 최대한 수용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이해관계가 없는 각계각층의 인사로 범국민협의체를 구성한 이유일 것이다. 현역 의원의 입장에서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것은 모른 체하는 등 개혁안을 정치권의 입맛대로 요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정치판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수백억원의 검은돈이 오간 정경 유착의 추악한 실상에 국민은 분통이 터진다.

이런데도 총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돈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며칠 전 총선 입후보 예정자와 관련된 사조직이나 단체가 모두 1225개라고 집계했는데 이들이 돈과 무관하게 돌아갈 리 없다. 중앙에서 아무리 정치개혁을 외쳐도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를 비웃는 이중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정치개혁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 총선은 겨우 4개월 남았다. 이번 총선은 검은돈의 유령이 기웃거리지 않는 첫 선거가 돼야 한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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