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남선우/이혼이 너무 쉽다

입력 2003-12-03 18:14수정 2009-10-1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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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이혼이 너무 쉽다. 모 재벌가의 며느리였다가 최근 이혼한 전 TV 탤런트 고현정씨의 경우 당사자들 없이 가정법원 판사와 직원, 그리고 쌍방 변호인만 참석한 가운데 이혼이 이뤄졌다고 한다.

미국에서 변호사 노릇을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한국 가족법과 미국 가족법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재미동포 중 이혼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국 이혼 절차의 복잡성에 대해 놀라워한다. 내가 그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는 결혼이 어렵고 이혼은 쉽지만, 미국은 그 반대로 결혼은 쉽고 이혼은 어려운 나라입니다.”

소위 상류층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의 결혼은 별반 신경이 안 쓰이는 행사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광고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 반지 없이 약혼하고 결혼하는 젊은이들이 허다하다. 한국과는 문화가 달라 혈액검사, 결혼허가증, 등록비 등이 필요한데 이도 100달러 내외면 된다.

하지만 이혼 절차는 길고도 복잡하다.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청교도들이 세워놓은 법제도와 전통 때문일 것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여러 주에서 유일한 이혼 근거는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배우자의 간통뿐이었다. 그것도 배우자가 용서하면 없어져버리는 근거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혼 근거가 늘기는 했지만 절차가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양측이 이혼하기로 합의했고 재산분배나 자녀 양육권에 대해 분규가 없는 경우라도 대개 1년 이상 실제로 별거한 다음에야 이혼 근거가 생겨 소송을 시작할 수 있다. 합의가 없이 별거하는 경우에는 2년 이상 따로 산 다음에야 법적 수속을 밟을 수 있다. 소송이 시작돼도 법원 스케줄에 따라 몇 달 내지 1년 후에나 이혼 재판이 열린다. 재산 문제 등으로 팽팽히 맞설 경우 재판이 몇 년 끌 수도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하루에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이 이혼한다는 통계를 보면 한국의 이혼율이 미국의 그것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오죽하면 보건복지부가 이혼 전에 3∼6개월의 숙려(熟慮) 기간을 두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을까.

차가운 통계숫자 뒤에는 이혼에 수반되는 본인들과 자녀들의 정서불안이 도사리고 있다고 짐작된다. 미국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알코올 중독 및 마약 습관은 대부분 가정불화, 가정파탄이라는 토양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숙려 기간을 의무화하는 것이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혼과 행복추구는 거리가 멀다. 한쪽이 부정을 저질렀거나 폭력을 휘둘러 배우자의 생명이나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혼하기가 쉽지 않도록 하는 것이 충동적 이혼, 나중에 가서 후회하는 이혼을 방지하는 방법이 될 듯싶다.

원천적으로는 남편이든 아내든 결혼서약에 충실하고자 노력할 때에만 지속적이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가능하다. 나는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오는 고객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해준다.

“이혼해도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화해를 모색해 보십시오. 원한다면 제 결혼생활에 도움이 된 성서연구를 권합니다.”

남선우 고려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재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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