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선조들의 魂이 담긴 ‘우리의 다리’

  • 입력 2003년 10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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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

손광섭 지음

242쪽 1만원 이야기꽃

전남 순천시 조계산 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선암사. 복숭아밭으로 가득한 마을을 헤쳐 그곳으로 가면 두 개의 무지개 모양 다리가 나타난다. 뒤에 있는 큰 다리가 승선교(昇仙橋). 조계산 계곡의 물소리가 세차게 쏟아지고 하늘을 가린 고목들이 짙은 그늘을 만든다. 이름 그대로 다리와 계곡이 잘 어우러져 한동안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앞쪽 계곡으로 내려가 다리를 올려보면 전설 속의 선경(仙境)을 대한 듯 입을 열 수 없다.

건축 현장에서 뼈가 굵은 건설사 사장이 옛 다리를 화보와 함께 묶어 책으로 펴냈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정과리가 추천의 글에서 말하듯 이 글은 ‘경제활동으로 분주한 사람이 잠깐의 휴식기를 빌려 적은 심심풀이 여기(餘技)도 아니고, 방계의 전문가가 거드름을 피우며 내갈긴 지식 노트도 아니다’. 저자는 사라지거나 퇴락해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선인들의 자취와 그 의미를 닦아내 이 자리에서 살아있는 생생한 ‘현재’로 살려낸다.

단순한 개개 다리들의 소개를 넘어 옛 다리의 역사에 대한 꼼꼼한 설명도 돋보인다. 기술과 형식을 갖춘 다리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그러나 오늘날처럼 물을 건너기 위한 기능적 요소만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선조들은 그들의 정신적인 염원을 다리에 담았다. 그래서 모든 다리에는 그만의 문양과 양식, 전설이 있다.

“우리의 옛 다리들은 가만 들여다보면 세계 어느 조각 작품에 뒤지지 않는 수수한 자연미를 표현하고 있다. 그저 길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김새 하나하나에 기교를 부린 예술이다. 건너다보면 마치 옛날의 ‘그들’이 내게 들어오는 것 같아 그 자리에 꼼짝 못하고 서 있어야 했던 적도 있다.”

다리를 소개하다 보면 우리나라 곳곳의 멋진 길 소개도 빠지지 않는다. 곡성 태안사로 오르는 능파교 길을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소개한다. 정갈하고 조용하여 오솔길 같고, 넓지 않아 교만해 보이지 않으며, 잔잔하여 길을 껴안고 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광진건설과 공영건설의 대표로 재직 중인 저자는 청주문화원 이사와 청주건설박물관장도 맡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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