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 입력 2003년 10월 24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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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강만길 상지대 총장,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 박현채 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고 안병무 교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강만길 상지대 총장,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 박현채 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고 안병무 교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교수신문 엮음/388쪽 2만2000원 생각의 나무

길게는 100년, 짧게 잡아도 광복 이후 50년이 넘는 근대 학문의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 학문의 식민지성 극복이란 과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쩌면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압력은 더욱 거세지는 한편, 한국 전통 사유에 대한 성찰은 다시 소홀히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학계의 자생성 확보’란 과제 앞에는 지금까지보다 더 지난한 시련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간 ‘교수신문’은 2002년 1월∼2003년 3월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는 기획을 연재하며 우리 학문의 자생 가능성을 점검했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광복 이후 50여년 동안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론들 중 20개를 선정해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들의 평가는 ‘인색하다’고 할 만큼 냉정했다. “이론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 것’이라는 이유로 상석에 오른 이론은 없는지, 혹은 더욱 연마되고 제련돼야 할 것들이 시대적 한계에 부닥쳐 꼼짝없이 정박해 있는 안타까운 경우는 없는지 살펴보자는 것이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이론화한 자생이론들은 그동안 ‘희귀한 자생이론’이란 의미만으로 신성시되기도 했지만 ‘교수신문’은 이 이론들에 대해 ‘현재성’과 ‘보편성’이라는 관점에서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우선 각 이론에 대해 그 분야 전문가가 대표 필자로서 평가의 글을 썼다. 이어 이론 제창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평가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듣고 그 이론에 대한 관련학자들의 평가를 모아 정리했다.

먼저 한국 사회의 지적 문화적 토양을 바탕으로 당면 현실을 설명하는 이론적 역량을 갖춘 것으로는 조한혜정(연세대·사회학) 김영민 교수(한일장신대·철학) 등의 ‘탈식민주의적 글쓰기’, 고 안병무 교수(전 한국신학대·신학)의 ‘민중신학’,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의 ‘한국민주주의론’, 백낙청 명예교수(서울대·영문학)의 ‘분단체제론’, 강만길 상지대 총장(한국사학)의 ‘분단 극복의 사학’ 등이 검토됐다.

‘탈식민주의적 글쓰기’는 한국의 인문학이 식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정면으로 분석하며 그 극복의 실천적 대안으로 글쓰기 방식의 전환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얻었다.

‘한국민주주의론’은 한국 민주주의의 전개에 대한 역사적, 구조적 분석에서 각국의 이론적 성과를 적절히 소화해 내며 한국 사회를 보는 풍부한 관점과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론적 틀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분단체제론’은 사회과학적 문제에 대해 문학연구자가 담론적으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이론적 한계를 노출했고 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이에 천착해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더 정치하게 이론을 전개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한국의 현실로부터 출발하되 한국의 경계를 벗어나 보편적 이론으로 나아간 것으로는 장회익 녹색대 총장(물리학)의 ‘온생명 사상’, 1980년대 중반 사회과학계의 ‘사회구성체 논쟁’,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의 ‘심미적 이성’, 박동환 전 연세대 교수(철학)의 ‘3표 철학’ 등이 검토됐다.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의 ‘내재적 발전론’과 고 박현채 교수(전 조선대·경제학)의 ‘민족경제론’은 상당한 이론 축적을 가진 작업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현재성’의 기준에서는 다소 냉정한 평을 받았다.

김용옥의 ‘동양학 논쟁’과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현재의 문제를 짚어내 대중적 파급력과 선언적 충격성은 컸지만 이론적 엄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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