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11…명멸(明滅)(17)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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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0월26일 조선신궁대회에 출전

1만 m 우승 34분16초3

조선 제1위 일본 제13위

며칠 만에 제방 위를 달리는데 뒤에서 숨소리가 다가왔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동생이었다 동생은 아무 말없이 내 옆에서 달렸다 어깨 높이가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1㎞에 4분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데도 호흡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못 본 사이에 목울대도 튀어나오고 수염도 나고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요

목소리도 변했다 큐큐 파파

형이 큐큐 파파 혼자서 달릴 때는 콧노래 흥얼거릴 수 있는 속도로 달리라고 해서 오막살이 초가집에 돈돌날이요 오막살이 초가집에 돈돌날이요 봐라 달리는 리듬에 잘 맞는다 그란데 일주일 전부터 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요① 카는 후렴이 잘 안 나와서 거스러미 노래로 바꿨다 큐큐 파파

거스러미 노래라

제법 잘 맞는다 형도 한 번 불러 봐라

쏘 쏘 쏘라이쏘 거스러미도 남대천에 거스러미 반짝거린다 큐큐 파파

거스러미 오늘도 쏘 쏘 쏘라이쏘 거스러미도 남대천에 거스러미 반짝거린다 아 참 장도칼 큐큐 파파 수염 깎는 데 썼다 그거 아버지 끼재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니한테 물려주꾸마

고맙다 큐큐 파파 잘 쓰꾸마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달릴 때는 괜찮았다 식당에서 술주정꾼을 상대할 때도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고부터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옆에 임신 6개월인 여자와 아들이 잠자고 있는데 어둠은 누가 있든 상관하지 않았다 어둠은 살아 있었다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나를 벌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둠이 힐문하지 않아도 용서할 수 없다고 규탄하지 않아도 자신의 죄상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죄 많은 놈이다 온 얼굴에서 땀이 솟아 방울방울 흘러 떨어졌다 다음 방울은 왼쪽 관자놀이 조금 위 그 다음은 코 아래 아이구 12월인데 한증막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아이구 더워라 덥다 더워!

① 돈돌날이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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