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10…명멸(明滅)(16)

  • 입력 2003년 5월 8일 18시 04분


코멘트
아내는 삼베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로 아들의 옷가지와 이불을 마당으로 꺼내다 우물가에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모든 것이 재로 변해 아들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자 아내는 서랍장에서 태단지를 꺼내 말라비틀어진 배꼽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나는 잠시 뛰고 와야겠다 말하고 집을 나왔다 그 길로 집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눈을 뜨자 여자가 있었다 나는 그 여자네 가게로 굴러들었다 밀양극장 앞에 있는 식당 아니 기생도 있고 술도 파는 가게였다 가게 이름은 올림픽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장거리 선수가 올림픽이란 이름의 기생집에서 먹고 자고 게다가 세 채 건너 옆집은 아버지의 정부였던 여자가 경영하는 동아여관 하하 거의 해학극이 아닌가 해학극 같은 설정 속에서 하루하루가 구질구질하게 흘러갔다 슬픔이 나날의 색채를 지워버렸고 나날의 기복을 메워버렸다 모든 것이 속절없고 자신이 송두리째 잉여물이 된 것 같았다

당신네 집안은 우짜면 그래 팔자도 더럽노? 아버지는 단독에 여동생은 익사 장남은 전염병으로 죽고 아버지 정부였던 여자는 자궁에 생긴 병 때문에 아편 중독이라 카고 이복동생은 소아마비로 손발에 입도 제대로 못 쓴다 카고 아이고 자기 아버지하고 아들 뼈를 강물에 뿌린 사람은 조선 팔도를 다 뒤져도 없을 끼다 내 아들들도 그래 팔자가 더럽으면 우째 하겠노

아들들?

또 사내아일 끼다

우째 아는데

느낌이재 느낌

여자는 고쟁이를 주르륵 내렸다 내 앞이든 아들 앞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속옷을 벗는 여자였다 비둘기 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하복부 아들이 죽은 다음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을 때 병원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생긴 아이였다 등을 돌리자 업히듯 내 등에 매달려 쉰 목소리로 숨이 넘어갈 듯 속삭였다 여보 아 내 사랑 등이 봉긋한 젖가슴과 부푼 배에 짓눌렸다 내달이면 세 살이 되는 아들이 내 다리에 엉겨붙었다 아버지 아버지! 따가닥 따가닥 해 도 나는 목에 휘감긴 팔에서 빠져 나와 아들을 목말 태우고 밖으로 나갔다 등번호 962 조선지구 대표 구니모토 우철 선수 1번 라인에 정렬 요이 땅!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히힝! 히힝!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