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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28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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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초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로 불리며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전무후무한 3연패의 위업을 이뤘던 장태영 전 상업은행 감독(작고)은 “스피드건이 없던 시대지만 못해도 140㎞는 던졌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장씨는 1m60을 겨우 넘긴 왜소한 체격에도 반세기 전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중 한 명이었음이 분명하다.
세월이 흘러 선수들의 체격이 커지고 투구 메커니즘이 발달하면서 볼 스피드도 빨라졌다. 27일 SK의 ‘총알 탄 사나이’ 엄정욱이 문학 현대전에서 158㎞를 던져 비공인이긴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던 국내 최고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강속구와 관련된 화제를 정리해 본다.》
● 세계 최고는 과연 누구일까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세계 최고의 강속구 투수는 ‘텍사스 특급’ 놀란 라이언이다. 그는 74년 8월21일 애너하임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시속 100.9마일(162.4㎞)을 던졌다. 아직도 이 기록이 세계 최고로 공인받고 있다.
아시아는 158㎞가 최고 기록이다. 일본의 이라부 히데키(한신)와 야마구치 가즈오(오릭스)가 나란히 기록했다. 엄정욱이 27일 기록한 158㎞는 자신의 최고기록을 2㎞ 뛰어넘은 것.
● 엄정욱이 각광받는 이유는?
27일 문학구장을 찾은 인천 팬들은 홈팀인 SK가 0-6의 완봉패를 당했지만 승패는 신경쓰지 않았다. 던지는 공마다 150㎞를 훌쩍 넘기는 엄정욱의 ‘K쇼’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
바로 이 점이다. 엄정욱은 이날 7회부터 2이닝 동안 총 38개의 공을 던졌는데 이중 가장 느린 직구가 144㎞. 23개의 직구 중 150㎞가 넘는 것은 무려 18개나 됐다.
엄정욱의 광속구 퍼레이드는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4월 상무와의 2군경기에서 159㎞를 던진 그는 공식경기인 5월11일 문학 기아전에서 156㎞를 던져 종전 최고였던 해태 선동렬(현 주니치 코치)의 155㎞를 넘어섰다. 이어 올해 3월3일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 때 160㎞를 기록했다고 하나 이는 자체청백전에서 나온 것.
● 빠른 게 능사는 아니다
현장의 야구감독과 전문가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소리다. SK 조범현 감독은 엄정욱에게 구속이 떨어지더라도 들쑥날쑥한 제구력을 가다듬을 것을 집중 주문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선 ‘제구력의 마술사’로 불리는 애틀랜타의 그레그 매덕스가, 국내에선 OB 장호연(현 충암고 감독)이 130㎞대의 ‘거북이 공’으로도 최고 투수가 됐다.
같은 속도의 공이라도 질에서 차이가 난다. 스피드건은 대체로 투수가 공을 뿌린 순간의 시속을 재는데 이는 포수가 공을 받을 때의 종속보다 10㎞ 정도 빠르다. 아무리 빠른 공이라도 ‘공이 날린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종속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선동렬은 전성기 때 시속과 종속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그의 공이 ‘언터처블’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 투구 스피드는 비공인 기록
사실 엄정욱의 27일 최고기록은 전광판에는 156㎞가 찍혔다. 상대 팀인 한화의 스피드건에는 155㎞가 나왔다. 이는 스피드건이 기계의 종류와 놓인 위치, 재는 각도, 거리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상대평가는 될지언정 절대평가는 어려운 탓에 한미일 어느 나라도 공인기록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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