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盧참모 수뢰說수사 물건너갔다"

  • 입력 2003년 1월 3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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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직자들의 눈과 귀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입에 모아지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당선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준비된’ 발언으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5년간 처신의 준거로 삼으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기자는 최근 노 당선자의 ‘참모들 챙기기’ 발언을 받아들이는 검찰 일각의 반응을 보면서 노 당선자가 헤쳐나가야 할 길이 간단치 않음을 느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노 당선자의 참모 10여명을 인수위 비서실에 앉힌 2일 ‘국민의 정부’에서 굵직한 특별수사를 맡았던 현직 검사는 “나라종금 비자금사건은 이제 물 건너갔다”며 허탈해했다.

이날 임명된 비서진 가운데에는 지난해 대검 중수부 수사에서 나라종금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참모 2명이 포함돼 있다. 노 당선자는 지난달 말 “나와 고락을 함께 한 참모들을 끌어안고 가겠다”며 이들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이 검사의 논리는 간단했다. “검찰이 바보가 아닌 이상 민주당이 ‘사실이 아니다’고 논평한 사건을, 더욱이 노 당선자가 관련자들을 ‘끌어안겠다’고 밝힌 마당에 더 이상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 수뇌부가 이 같은 논리대로 결정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대검 중수부는 3일 “나라종금 사건은 더 이상 수사할 게 없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가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모들을 신임한다고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것을 지적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노 당선자가 원칙을 지키려고 해도 ‘기성 질서’는 그의 발언을 자기네 독법(讀法)으로 읽어 낸다는 것이다. 검찰 일부가 노 당선자의 발언을 ‘수사 불가’로 해석한 것과 비슷한 사례는 앞으로 공직사회 경제계 법조계 노동계 등 곳곳에서 수도 없이 생겨날 수 있다.

따라서 노 당선자는 앞으로 개혁 추진 과정에서 명백한 메시지를 보다 명확하게 던져야 한다. 가령 “참모를 끌어안겠다”고 말할 때는 ‘그렇다고 검찰 수사가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는 메시지도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 당선자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원칙은 훼손당할 가능성이 높다.

김승련 정치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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