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 분리독립 10주년]경쟁 통해 ‘東歐허브’로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7시 00분


“불만스러운 동거보다 잘한 이혼이 낫다.”

1일로 분리 독립한 지 꼭 10년을 맞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가 10년 동안 시장개혁과 민주화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인 결과 동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로 나란히 부상하고 있다. 두 나라는 올해 함께 당당한 서방국가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2004년부터 두 나라를 정식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슬로바키아는 이에 앞서 11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도 가입 허가를 받아내 1998년 일찌감치 가입한 체코에 이어 NATO에 합류했다.

1980년대 말 동유럽의 자유화가 시작된 후 줄곧 개혁과 개방의 선두주자로 주목받아온 체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슬로바키아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 “슬로바키아가 서방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촌티가 나던 수도 브라티슬라바가 동유럽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놀랍게 변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연방을 구성하던 체코와 슬로바키아 사이의 ‘격차’가 10년 전 분리의 원인이 됐지만 두 나라는 분리를 통해 오히려 이 격차를 줄여가고 있다. 당시 탄탄한 산업기반을 갖고 있는 체코는 급진적인 시장개혁을 추진하려 했고 농업국인 슬로바키아는 온건한 경제개혁을 원해 갈등을 빚었다.


결국 양측은 1993년 1월1일 ‘조용한 결별’을 선택했다. 두 나라는 전(全)유럽이 통합으로 가고 있는 흐름과는 반대로 74년 동안 유지해 오던 연방을 깨고 분리독립을 선택하는 모험을 한 것. 하지만 분리 후 각기 적당한 방식과 속도로 개혁을 추진한 결과 함께 성장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해체의 길을 걸었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과 구 유고연방이 지난 10여년 동안 내전과 혼란을 겪고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과 비교하면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질서 있고 평화스러운 분리가 더욱 돋보인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대화를 통해 분리를 결정하고 국가 자산의 분할을 2000년에야 마무리지었을 정도로 신중하게 분리작업을 진행했다. 이 ‘벨벳 분리(전쟁 없는 분리)’는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벨벳 혁명(무혈민주화 혁명)’만큼이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분리 당시에는 반대 여론도 있었으나 현재는 ‘헤어지기 잘했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며 겨우 3∼5%의 국민만이 과거 통합국가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반면 최근 전(全)러시아여론조사센터(VCIOM)의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 10명 중 7명이 여전히 소련의 해체를 아쉬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대조를 이뤘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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