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강수돌/˝시골생활, 마음은 굴뚝 같다고요?­˝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33분


1997년 봄 고려대 조치원 캠퍼스로 근무지를 옮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나는 마침내 수도권을 떠나자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가 살던 과천은 그런대로 살기가 좋았다. 하지만 좀 다른 눈으로 보자면, 나무들과 공원을 빼면 도시 전체가 시멘트와 아스팔트 덩어리 아닌가. 또 과천 청사 가는 길 근처에 ‘전원 도시’라는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층 건물이 하나 올라가면서 한 마디로 ‘맛’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망가지는구나” 하는 위기감도 들었다. 이른바 ‘쇼핑센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소비문화가 물신주의를 부추길 뿐 아니라 소비 자체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다짐했다.

도시 생활은 한 마디로 깔끔하고 세련되긴 해도 그 이면은 쓰레기나 똥오줌, 하수 등이 자연으로 순환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시골 출신인 아내도 당시 서울 봉천동의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으나 크게는 내 생각에 동의했다.

대개 사람들은 전원생활을 꿈에 그리면서도 ‘현실’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그 꿈을 ‘나중’으로 미룬다. 그런데 그 ‘현실’이란 게 뭔가.

▼외형주의 덫부터 빠져나와야▼

첫째는 직장이다. 먹고 살 직장 때문에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맞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 꿈을 날마다 꾸면 시골에 직장이 생기기도 한다. 아니면 시골 근처로 직장을 옮기면 된다. 문제는 그런 조건의 변화가 생겨도 여전히 결단이 서지 않는 경우다. 한편으론 시골에서 유기농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분들을 국가공무원 수준으로 대접해야 농업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직업이 된다. 지금 농업은 고생만 하고 남는 것 없는 일이 되었고, 2·3차 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사고 방식이 사태를 더 나쁘게 한다.

둘째 문제가 교육이다. 이 이면에는 솔직히 ‘일류대 강박증’이 있다. 마음으로는 일류주의와 대학의 위계서열을 깨고 싶으나, 역시 현실은 일류대를 나와야 편하다는 식이다. 그러나 내 생각엔 고등학교까지는 시골서 자라야 건전한 인격이 형성된다. 게다가 꼭 일류대를 나올 필요가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연구직 정도다. 더 중요한 건 학생들이 ‘일류대’가 아니라 자신이 배우고 싶은 분야의 ‘일류 스승’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 ‘일류대 강박증’ 때문에 온 사회가 병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이 각박한 세상에 그나마 살맛을 느끼게 하는 것은 시골의 체험과 기억이 아직도 우리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진정 교육을 생각한다면 시골로 가야 한다.

셋째는 역시 배우자의 동의다. 특히 배우자가 깔끔하고 세련되며 쇼핑 등 각종 문화적 혜택이 많은 도시 생활을 좋아한다면 어렵다. 어떤 경우는 부부가 뜻이 달라 따로 살기도 하나, 그럴 용기도 없으면 체념한다. 그런데 곰곰 따져보면 도시 생활의 간편주의는 겉으로는 매력적이나 실은 건강과 내면과 환경을 망친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니 삶의 자율성이 줄고, 세련된 것만 찾으니 광고와 유행, 외모에 민감해진다. 편한 것만 찾으니 돈을 많이 쓰면서도 이웃과 자연에 해만 끼친다. 결국 간편주의, 외형주의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와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도시를 떠날 수 있다.

▼일상 바꿔나가는 그 재미란…▼

그렇다고 나와 아내가 이 모든 문제를 제대로 극복해서 시골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도시적 생활 습관을 많이 갖고 있고 자연에도 해를 주며 산다. 하지만 날마다 한 걸음씩 바꾸어나가는 재미, 이것에 빠져 산다. 예컨대, 초등학생인 둘째와 셋째는 매일 10리씩을 걷다 보니 다리가 튼튼해지고 마음도 자연스러워졌다. 텃밭에 심은 야채들 속에 있는 벌레를 잡다보니 생명의 신기함도 느끼고 웬만한 벌레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또 집 바깥에 엉성하나마 부춧돌형 해우소(解憂所)를 내 손으로 만들고 아침마다 똥을 눈 뒤 거름밭에 쌓으니 퇴비가 절로 만들어진다. 똥오줌을 나누어 각기 거름으로 만들어 텃밭에 넣으면서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기’가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진짜 인간 냄새를 풍기려면, 도시와 시골의 분리 자체가 사라지고 모든 동네에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귀농운동이나 전원생활은 단지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강수돌은 누구?▽

1961년생. 서울대 경영학과와 대학원을 나와 독일 브레멘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사관계와 삶의 질’ ‘세계화의 덫’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냈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리에서 손수 귀틀집을 지어 살고 있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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