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96…전안례(奠雁禮) 18

  • 입력 2002년 12월 12일 17시 46분


노인은 거뭇거뭇 쭈글쭈글한 입술을 앞으로 쑥 내밀고, 훗훗 하고 숨을 내쉬었다. 웃었나 보다고 생각하는 순간, 방망이가 발바닥을 내리쳤다.

“아얏!”

형님이 때렸을 때보다, 숙부가 때렸을 때보다 한층 아팠다.

“아픈 게 당연하지. 네놈도 인혜를 아프게 했을 것 아니냐”

노인은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 우철은 맞은 발을 꾹꾹 누르면서 노인의 싯누런 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역시 웃고 있는 것이리라. 잇새 벌어져는 있어도 빠진 이는 하나도 없다. 대체 몇 살이나 됐을까? 인혜네 할밴가? 아니, 훨씬 더 나이가 많을 것 같다. 증조할배?

“묻는 말에 대답 안 하나!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노인은 방망이를 쥔 손에 힘을 주고 같은 발을 또 때렸다.

“아이구! 잘못했습니다”

“아프게 해 놓고서, 이뻐해 줬나!”

“예, 그랬습니다!”

우철이 소리를 질렀다.

“어디, 좀 보자. 인혜야!”

작은 방에서 벽에다 귀를 대고 조마조마하고 있던 인혜는 치마를 활짝 펼치고 앉아 무릎을 세우고 절을 하고서 큰방으로 들어가자, 발이 묶인 신랑과 입은 꼭 다물고 눈짓으로만 미소를 나누었다.

“오오, 꽃처럼 이쁘고 별처럼 고운 우리 증손녀로구나”

“어디 제대로 사랑을 받았는지 어쩐지, 목소리를 들어보면 다 안다. 인혜야, 노래 하나 불러 봐라” 준호가 여동생에게 말했다.

인혜는 등을 꼿꼿하게 펴고 아이가 자라고 있는 아랫배에 살며시 두 손을 얹고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빨갛게 연지를 바른 입술을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꽃 사시오 꽃 사 꽃을 사시오 꽃을 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에 꽃이로구나

꽃바구니 울러메고 꽃 팔러 나왔소

붉은 꽃 파란 꽃 노리고도 하얀 꽃

남색 자색에 연분홍 울긋불긋

빛난 꽃 아롱다롱이 고운 꽃

눈동자에 맑은 빛이 넘쳤다. 햇살과 바람을 맞으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무궁화 같았다.

인혜가 한참 노래하는데 언니들이 육포와 국수를 상에 담아 내왔다. 준호가 우철의 발에 묶여 있는 천을 풀어주었다. 노인은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같이 추자고 우철의 팔을 잡아당겼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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