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성철/서울대 폐교가 상책인가

  • 입력 2002년 9월 9일 18시 08분


우리 사회에서 특정 학교 출신자들의 ‘끼리끼리 문화’는 공사(公私)를 가리지 않는다. 취직하거나 승진할 때, 심지어 결혼할 때도 학벌을 우선시하는 학벌주의의 폐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학벌주의는 왜곡된 교육열과 입시 과열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치열한 입시경쟁은 보다 좋은 교육을 받으려는 것보다는 사회에서 비중 있는 위치를 차지한 졸업생이 많은 학교에 들어가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측면도 적지 않다.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7일 “개인적으로 서울대를 없애는 것에 찬성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폐해를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상고를 졸업하고 판사와 국회의원, 장관을 거쳐 주요 정당의 대통령후보까지 된 그 역시 그동안 학벌에 대한 차별을 뼈저리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벌주의 철폐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과 제도의 개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이 모든 책임을 서울대에 덮어씌워 ‘폐교’라는 극약처방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다. 의식과 제도의 개혁이 없는 상태에서 서울대가 문을 닫더라도 제2, 제3의 서울대가 나타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학벌 철폐를 위해 서울대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구더기가 무서워 애써 담은 장을 독째 내다 버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학의 존재 가치는 우수한 자질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 국가를 이끌 인재로 길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나라에서 우수 대학을 육성하려고 힘을 쏟고 있는 마당에 주요 정당의 대통령후보가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은 외국의 유수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낮은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대학의 발전 방안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학벌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면 성급하게 ‘서울대 폐지론’을 내세우기보다는 학벌보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게 대통령후보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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