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해석에 반대한다'/"예술은 느낌…해석하지 말라"

  • 입력 2002년 9월 6일 17시 33분


□해석에 반대한다 / 수전 손 지음 이민아 옮김 / 470쪽 2만3000원 이후

수전 손택은 영재였다. 월반을 거듭해 불과 15세에 버클리대에 입학했다. 같은 해 시카고대로 전학한 후에는 28세의 젊은 교수와 사랑에 빠져 19세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시카고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문학 신학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이후 문학평론가와 문화비평가, 소설가, 사진이론가, 연극인과 영화 감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 되었다.

손택이 문단과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31세 되던 해(1964년)에 발표한 ‘해석에 반대한다’와 ‘캠프에 대한 단상’이라는 두 편의 도전적인 글 때문이었다. 당시는 마침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가 ‘소설의 죽음’을 선언해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던 해여서, 기존의 관습과 전통에 도전한 손택의 두 에세이는 모더니즘의 종언을 선포한 피들러의 글과 더불어 1960년대 반(反)문화의 서장을 연 기념비적 선언문이 되었다.

그녀가 반기를 들었던 대상은 ‘시의 이해’와 ‘소설의 이해’라는 저서를 통해 예술작품에 고정된 해석을 부여하고 그것들을 정전화하려고 했던 신비평가들과 모더니스트들이었다. 손택은 우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이론’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시작한다. 그녀에 의하면, 모방이론은 모방의 대상 곧 ‘내용’을 중시하며 그 내용을 밝혀내려는 시도인 ‘해석’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러한 해석작업은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보다는 작품의 외적 요소인 전통적 가치나 도덕적 진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그것들의 옹호를 통해 작품을 정전화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심지어 전통적 가치에 도전하는 예술작품들까지도 비평가들이 의도적 해석을 통해 길들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손택은 “예술에서 고정된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을 예술 자체로서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며,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감수성’을 주창한다. 손택은 그것을 ‘예술의 성애학’이라고 부르며, 해석을 위한 해석을 비판한다. 그녀에 의하면, 예술의 본질은 강간이 아니라 유혹인데,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려는 해석은 예술에 대한 강간 행위가 된다. 신비평과 모더니즘에 반대하며 1960년대에 시작된, 고정된 해석에 반대하는 ‘새로운 감수성의 문학’은 바로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다.

손택은 형식도 내용만큼 중요하다고 말하며, 내용과 형식의 이분법적 구분을 초월하는 더 포괄적인 개념인 ‘스타일’을 주창한다. 스타일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자연히 ‘캠프(camp)’이론으로 이어진다. 캠프는 교양과 도덕과 내용을 중시하는 제도권과는 반대에 있는 것으로서, 스타일과 즐거움과 자유를 중요시하는 반문화적 성향을 지칭한다. 손택은 ‘캠프’ 이론을 통해, 60년대 진보주의를 중요한 문화 현상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녀의 저술 ‘해석에 반대한다’는 한 시대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탁월한 문화론들을 모은 것이다. 손택은 이 책에서 내용과 형식, 그리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구분을 명쾌하게 해체하며, 모든 것의 경계가 소멸하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예시해주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이미 1960년대 중반에 21세기에 일어날 현상들을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에 반대한다’는 급격한 인식의 변화를 겪었던 1960년대의 시대적 성찰이면서, 동시에 다음 세기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예견하고 있는 예언서와도 같다.

손택은 피들러와 더불어 1960년대 이후 경직된 백인 보수주의 주류 문화에 대항해 새로운 감수성의 문학과 진보주의를 주창했던 대표적인 미국의 반(反)지성으로서 세계 예술계와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존의 관습과 인식의 패각으로부터 예술을 해방시켜 자유로운 ‘캠프’로 보냈던 시대의 선각자이자 문화의 해방자였다.

그녀는 상업주의와 전자매체에 의해 예술이 쇠퇴하고 있다는 위기론을 이렇게 일축했다.“우리가 얻게될 것은 예술의 쇠퇴가 아니라, 예술의 기능변화다.”

‘해석에 반대한다’가 오늘날 예술의 위기 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바이블’이 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김성곤 서울대 언어교육원장·영문학 suk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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