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병문/지방정책 대결의 場돼야

  • 입력 2002년 5월 27일 18시 51분


지난 10년 동안의 지방정치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한 마디로 절망이다. 너나없이 개혁을 외쳤으나 변화를 체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반면 부패는 창궐하고 선심행정과 예산낭비는 극에 달했다.

이미 40여명의 단체장이 비리에 연루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16명의 시도지사 가운데 5명이 부정부패 혐의로 사법 처리되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 사람의 단체장이라도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중앙정치와의 분리 절실▼

지방선거가 되풀이 실시되고 중앙 수준에서 정권이 교체되었어도 지방의 권력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지방정치인들은 자기들끼리 철옹성을 구축하고 선거만 끝나면 주민의 비판에는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전리품을 나누어 갖는 100년 전의 엽관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단체장의 욕심 때문에 지방공기업 인사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방의 관급공사는 지방정치인들의 자금줄이다. 지방공무원의 인사는 단체장에 대한 충성심의 경연장이다.

한국의 지방선거는 이러한 ‘조폭 정치’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전락했다. 이러한 퇴행적 지방정치의 일차적 원인은 지역패권주의로 인하여 지방정치가 일당지배에 놓여있다는 데 있다. 국토는 연고에 따라 지역으로 분할되고 분할된 지역은 ‘땅따먹기’의 대상일 뿐이다. 모든 정당이 지방선거를 정국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 결과 그동안 실시된 지방선거는 지방선거가 아니라 중앙선거였다. 결국 지방의 쟁점은 실종되고 중앙정치의 논리와 쟁점이 지방선거를 지배했다. 공천이 곧 당선인 정치구조에서 지방정치인들은 공천권을 거머쥔 중앙당과 국회의원만을 바라보고 주민의 기대와 요구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지방정치를 중앙정치로부터 분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 쟁점이 선거를 결정하게 해야 한다. 유권자가 지방의 정책에 대한 결정권이 중앙정부에 있지 않고 지방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책 실패에 따른 폐해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지방선거를 지방정치인들에 대한 평가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전문성이나 자질면에서 뒤지는 후보라도 특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당선되는 폐습이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정치인의 무능에 대해서까지도 중앙정부에 책임을 전가하고 지역주의에 편승함으로써 면책되는 현상을 단절하고 지방정치인의 이권 개입이나 정책 실패 내지 예산낭비에 대해 심판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실시된다는 점에서 유례 없는 과열 혼탁이 예상된다. 각 당은 대선공약을 지방선거공약으로 발표하는 등 지방선거인지 대통령선거인지를 분간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과 지방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은 달라야 한다. 대통령 후보는 국가 발전에 필요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는 달리 지방정치인은 지방의 현안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과 실천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각 당은 중앙당이 적극적으로 개입할수록 지방선거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이 증폭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지역패권주의에 편승한 정당간의 힘겨루기가 정치 혐오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지방선거가 삶의 질 향상과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대결의 장이 될 때 주민은 선거에 관심을 갖는다. 중앙정치의 논리에 함몰되어 지방선거의 의미가 사라지면 주민은 투표를 포기하고 월드컵경기장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무능 지방정치인 심판을▼

한편 불공정 경선에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후보가 증가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정치의 희망이다. 실패한 주민 경선이 오히려 변화의 씨앗이며 21세기 한국 정치의 희망을 잉태한다. 이는 지구당위원장의 조직장악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지방의 정치인 충원 과정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는 징후다. 아울러 주민에게는 선택의 폭이 확대되는 의미가 있다.

대통령선거에 대해서는 12월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월드컵경기는 ‘국민의 축제’, 지방선거는 ‘그들만의 축제’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할 때이다. 유권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만이 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병문 전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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