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김정일 '픽션정치' 해부 '북한정치의…'

  • 입력 2002년 5월 24일 17시 57분


북한 정치의 시네마폴리티카/신일철 지음/365쪽 1만2000원 이지북

이 책은 저자의 전문성과 노련한 필치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엮어나간 ‘김정일 해부학’이다. 며칠 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켜 “아프리카 왜소족 원주민인 피그미이고, 밥상머리에서 버릇없이 구는 아이이며, 국민을 굶기면서도 텍사스주 오스틴의 절반만한 수용소에 지식인들을 감금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려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김정일은 ‘구걸의 기아공화국’을 만들었고, ‘이중전술’ ‘눈속임’ ‘기습적 역공’ ‘피해망상의 겁쟁이’ ‘구사주의 독재’ ‘과격’ 등의 속성을 지녔다고 했다. 서로 상통하는 김정일 인물평이다.

특히 이 책은 김정일의 정치를 ‘시네마폴리티카’라고 규정했다. 시네마폴리티카는 “현실에 없는 허구와 허위의 드라마 연출에 자기도취하고 있는 시네마 정치”를 의미한다. 김정일은 현실이 아닌 픽션 속의 극장에서나 연출될 수 있는 허구성을 현실의 통치 행위에서 조작적으로 기만한다고 했다. 그래서 현실 정치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자폐증 증후’로 인해 개혁 개방에 나설 수 없고 오직 영화 예술을 모델로 한 허구적 상징조작을 통해 개방하는 척한다는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래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로 나오는 것이 아니요, 단지 시네마폴리티카를 통해 상징 조작에 그칠 따름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오랜 동안 대학에서 철학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연구해 온 우리 학계 원로다. 신 교수는 그 동안 연마된 분석력과 해박한 지식을 마음껏 풀어서 북한의 주체사상, 김정일의 대남전술, 6·15공동선언의 문제점, 선군정치의 딜레마, 황장엽의 망명과 주체사상, 통일문제에 대한 ‘철학적 탐색’을 통해 북한 변화의 허실을 다뤘다.

특히 신 교수는 아놀드 토인비, 칼 포퍼, 조지 오웰, 위르겐 하버마스, 토마스 홉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J A 슘페터, V 마레토 등의 이론을 여기저기서 원용하면서 김정일의 정치 행태를 분석해 나갔다. 신 교수는 북한 문제와 통일 방향을 논의하면서 여러 외국 지성들의 논거를 대입시킴으로써 접근의 지적 지평을 넓혀주었다.

다만 신 교수는 ‘통일철학’이라는 대목에서 무척 고민하면서도 확실한 답변을 주지 못했다. 그는 “섣불리 ‘통일철학’이라는 새 이데올로기를 조작하기보다는 통일문제의 기반에 있는 반공주의적 고정관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대한 학문적 노력이 요청된다”고 함으로써 미완의 과제로 남겨뒀다. 문제는 ‘반공주의적 고정관념’을 극복하고자 할 때, 자유민주주의를 얼마나 양보해야 하는가 하는 부담이 따른다는 데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통일을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데서 ‘반공주의적 고정관념’의 극복은 더욱 어렵다.

이 책은 북한정치의 시네마폴리티카를 딱딱한 이론적 체계적 분석보다는 단상적이며 평론적인 접근으로 소화했다. 읽기에 편하고 재미있다. 김정일 주체사상과 통치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을 북돋아주는 글들이다.

정용석 단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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