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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9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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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펜실베이니아 출신으로 본명은 칼 밀러. 1945년 창창한 20대 미 해군중위로 한국 땅을 밟은 이래 나머지 57년 생애를 이곳에서 살았다.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 1946년 제대 후 미군정청 한국은행 증권회사 등 만년까지 몇 개의 직장을 가졌으나 그의 ‘천직’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었다. 80년대 초에는 홍콩 경제주간지에 ‘아시아에서 가장 유능한 투자자문역’으로 소개됐을 만큼 ‘돈버는 재주’도 뛰어났다고 하지만, 그는 그렇게 번 돈을 한 푼도 허튼 데 쓰지 않고 한 곳에 쏟아 부었다. 바로 충남 태안반도 갯마을에 자리잡은 천리포수목원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민옹이 우리 산하 구석구석과 세계 60여개국에서 수집해온 7000여종 2000만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식물의 보고(寶庫)다. “인생은 길어야 백년이지만 나무는 천년을 삽니다. 내가 하는 수목원 사업은 이제 겨우 30년 됐지만 적어도 300년을 내다보고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도 자식처럼 키운 천리포 수목들은 몇백 년을 더 살며 내가 ‘제2의 조국’으로 삼은 한국에 바친 마지막 선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가 이미 병마에 시달리고 있던 작년에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그동안 많은 외국인들이 이 땅에서 좋은 일을 했지만 그는 나무를 심는 일로 오래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겼다. 자연이 인간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그는 우리 한국인의 심성에 두고두고 좋은 영향을 끼칠 일을 하고 간 셈이다. “지구의 한 귀퉁이를 아름답게 만들고 가신 민병갈님께 감사와 안녕의 인사를 드립니다.” “한국사람보다도 더 한국사람으로서 살다 가신 분이 존경스럽습니다.” 9일 오후 천리포수목원 홈페이지(www.chollipo.org)에는 많은 이들이 조문을 남겼다. 민옹의 명복을 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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