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스승의 에로스가 플라톤을 키웠다 '플라톤은 아팠다'

  • 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36분


◇ 플라톤은 아팠다/ 클로드 퓌자드 르노 지음 고재정 지음/ 307쪽 9000원 푸른숲

재즈 음악의 독특한 맛을 내는 요소 중의 하나가 ‘블루 음’(blue note)의 사용이다. 그런데 블루 음은 기존의 서양 음계로는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 블루 음은 가령 미와 미 플랫 사이에 존재하는 음으로써 반음이 최소의 간격인 서양 음계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보면 재즈 음악의 원천은 서양 음악과는 다른 흑인 음악일 것이다. 하지만 재즈 음악 역시 기존의 장음계나 단음계는 아니더라도 서양의 음계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 음악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재즈의 원천이 흑인 음악인지 서양 음악인지를 묻는다면 결국 재즈는 재즈일 뿐이라는 엉뚱한 답밖에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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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와 비슷한 의문이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주로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진짜 소크라테스의 사상일까, 아니면 플라톤의 창작일까? 아마도 엄밀한 고증학적 검증이나 문헌학적 연구 없이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르노의 이 책은 이런 학문적 절차들을 우회하여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르노는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의 말들을 대화편으로 묶어내게 된 배경을 찾아 나선다. 그리하여 소설은 플라톤이 마음의 상처를 가장 크게 받은 시기인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다음날부터 시작된다.

처형 일이 아닌 다음날부터 시작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플라톤을 끝까지 괴롭히는 실체는 스승의 부재에 대한 번민인데, 사실상 존재에 대한 부재를 느끼는 것은 사라지는 순간이 아닌 사라진 이후부터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날 밤의 과음으로 이질에 걸려 소크라테스가 최후를 맞는 현장에 없었다는 플라톤의 죄책감이 고통을 배가시켰다.

여기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실존적 상실감과 정신적 좌표의 실종이라는 정신적 번뇌를 플라톤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프랑스에서 인정받는 현대 무용가이기도 한 그녀는 마치 신체의 미세한 동작을 표현하듯 한 사상가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따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보기에 바로 이런 번뇌의 극복을 통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이었다. 르노는 여기서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한 몸이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찾아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모습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모습과는 약간 다르다. 이 소설 속에서 밝혀진 소크라테스는 로고스의 화신이 아니다. 그는 에로스를 중시하는 감성의 소유자이다. 플라톤의 정신적 성장은 바로 스승의 에로스적인 면을 깨닫게 되는 과정과 일치한다.

어쩌면 소설 속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묘한 에로티시즘의 흔적들 역시, 로고스가 아닌 에로스야말로 삶을 풍부하게 하는 요소라는 그녀의 생각을 은연 중에 설파하는 장치다. 이렇게 보면 결국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플라톤은 동시에 소크라테스이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르노 자신이기도 하다.

박영욱(고려대 강사·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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