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로봇 세상' 영화속 얘기 아니다

입력 2001-10-03 18:50수정 2009-09-19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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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부터 31일까지 중동의 바레인에서 사람과 컴퓨터가 체스판 위에서 맞붙는다. 선수는 블라디미르 크람니크(26)와 딥 프리츠. 러시아 출신의 크람니크는 작년에 15년 동안 세계 챔피언으로 군림한 게리 카스파로프로부터 타이틀을 빼앗은 인물이며 프리츠는 1초에 400만 가지의 수를 읽는다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이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의 개발을 겨냥한 학문으로 인공지능이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56년 여름.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났건만 사람을 닮은 컴퓨터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사람처럼 지능을 가진 기계를 개발하려면 사람의 뇌를 본떠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뇌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의사나 체스 선수 등 특정 분야 전문가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본뜬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상식 추론, 즉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매일 겪는 문제를 처리하는 능력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작업이 의외로 벅찬 일임을 절감하게 된다.

아무나 알 수 없는 것(전문지식)은 소프트웨어로 흉내내기 쉬운 반면에 누구나 알고 있는 것(상식)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왜냐하면 전문지식은 소정 기간의 훈련으로 습득이 가능하지만 상식은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획득한 엄청난 규모의 지식과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에이 아이(인공지능)’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열한 살짜리 로봇 소년처럼 지능은 물론 감정까지 가진 기계는 개발이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컴퓨터 과학자들은 그러한 기계의 개발은 가능하며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로봇의 미래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전망한 인물은 미국의 한스 모라벡이다. 모라벡에 따르면 20세기 로봇은 곤충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지만 21세기에는 10년마다 세대가 바뀔 정도로 지능이 향상된다. 2010년까지 1세대, 2020년까지 2세대, 2030년까지 3세대, 2040년까지 4세대 로봇이 개발된다는 것이다.

먼저 1세대 로봇은 동물로 치면 도마뱀 정도의 지능을 갖는다. 크기와 모양은 사람을 닮고 다리는 2개에서 6개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평평한 지면뿐만 아니라 계단을 돌아다닐 수 있다. 집안에서 목욕탕을 청소하거나 잔디를 손질한다. 테러범이 숨겨놓은 폭탄을 찾아내는 일도 척척 해낸다.

2020년까지 나타날 2세대 로봇은 1세대보다 성능이 30배나 뛰어나며 생쥐 정도로 영리하다. 1세대와 다른 점은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주위 환경에 따라 스스로 적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3세대 로봇은 원숭이만큼 머리가 좋다.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 가령 부엌에서 요리할 때 2세대는 팔꿈치를 식탁에 부딪친 다음에 대책을 세우지만 3세대 로봇은 미리 충돌을 피하는 방법을 궁리한다는 의미이다.

2040년까지 개발될 4세대 로봇은 20세기의 로봇보다 성능이 100만배 이상 뛰어나고 3세대보다 30배나 똑똑하다. 이 세상에서 원숭이보다 머리가 좋은 동물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말하자면 사람처럼 생각할 줄 아는 로봇이다.

일단 4세대 로봇이 출현하면 놀라운 속도로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기 시작할 것이다. 모라벡에 따르면 2050년 이후 지구의 주인은 인류에서 로봇으로 바뀌게 된다. 이 로봇은 소프트웨어로 만든 인류의 정신적 유산, 이를테면 지식 문화 가치관을 모두 물려받게 되므로 자식이라 할 수 있다. 모라벡은 이러한 로봇을 마음의 아이들(mind children)이라고 부른다. 혹자는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에 빗대어 지혜를 가진 로봇, 즉 ‘로보사피엔스’라는 새로운 종이 출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람보다 똑똑한 기계가 개발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바레인의 대결에서 컴퓨터의 승리를 점친다.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인 카스파로프가 딥 블루에게 6전1승3무2패로 패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크람니크가 블루의 후계자인 프리츠와의 여덟 번에 걸친 승부에서 스승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기를 해볼 만하지 않은가.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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