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유령과 미녀의 애절한 사랑 '오페라의 유령'

  • 입력 2001년 9월 21일 18시 42분


오페라의 유령/가스통 르루 장편소설

뮤지컬 ‘오페라 유령’의 국내 공연을 앞두고 프랑스 추리소설가 가스통 루르(1868∼1927)의 원작소설이 연달아 출간됐다.

문학세계사에서 나온 책(성귀수 옮김)은 프랑스 원작 소설을 직접 번역했고, 예담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보경 옮김)은 미국 하퍼콜린스사 영역본을 중역한 것이다.

조만간 출간될 문학동네판(최인자 옮김)은 미국 펭귄북스사 것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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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판본을 비교해보니 전체적인 내용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문학세계사판은 원작의 번역에 충실한 흔적이 보이고, 예담의 작품은 이해하기 쉽도록 문장을 좀 손질한 듯싶다. 읽는 이의 취향에 따라 호(好) 불호(不好)가 다르리라.

이 소설이 유명해진 것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때문이다. 입장권 판매수익만 30억 달러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다.

그 명성 못지 않게 원작 소설 역시 미추(美醜) 선악(善惡) 생사(生死)가 얽힌 갈등을 사실적으로 박진감 있게 전개하고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를 다룬 점과 희곡의 지문처럼 급박한 행위를 표현하는 묘사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드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작품 무대는 파리의 오페라 극장이다. ‘오페라의 유령’으로 알려진 괴신사는 흉악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극장 지하 비밀장소에 숨어산다. 아름답고 순수한 신예 성악가인 크리스틴은 유령의 레슨을 받으며 마약에 빠지듯 그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러던 중 라울 자작이 크리스틴을 흠모하는 것을 알고 그녀를 납치해 지하 미궁으로 끌고 가 결혼식을 올리고자 한다. 라울은 죽음을 불사하고 실종된 크리스틴을 찾으러 지하 미궁을 헤맨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원작과 뮤지컬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소설은 화자와 시점을 바꿔가며 훨씬 깊이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유령으로 취급받은 괴신사(에릭)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부각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외국에서 이 뮤지컬을 본 사람에게는 원작 소설과 다른 부분들이 관심을 끌 것이다. 크리스틴에게 라울 자작과 자신(유령) 중 한 명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원작과 뮤지컬은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뮤지컬에서는 크리스틴이 “암흑의 가련한 존재여, 당신은 진정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라며 유령에게 키스하고 유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가면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크리스틴이 백작을 선택하면서 화약폭발 장치가 되어있는 극장 지하 미궁을 물에 잠기게 만든다.

크리스틴의 숭고한 사랑에 감동한 괴신사는 부음기사를 내달라는 말을 남기고 지하미궁으로 사라진다. 대미는 다름 아닌 잡지에 난 짤막한 기사. ‘에릭 사망.’

웨버는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원작에서 솎아내어 재배치하고, 세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뽑아내어 극적으로 재구성했다. 어둡고 음침한 원작의 분위기를 무게 있고 화려한 뮤지컬로 탈바꿈시킨 것이 성공을 거둔 원동력이 된 듯하다.

소설의 극화(劇化)에서나 장중한 뮤지컬 작곡에서 원작의 에너지를 그대로 옮긴 탁월함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윤 호 진(뮤지컬 연출가·에이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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