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문권모/'IT 선진국'의 현주소

  • 입력 2001년 8월 9일 18시 47분


7일 정부과천청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경제분야 장관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경제 현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최근 정보화 변화속도는 빛의 빠르기와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초고속통신망을 세계 최초로 깔았습니다. 인프라에선 선진국보다 앞섰습니다.”

회의에서는 정보기술(IT)산업과 관련된 현정부의 ‘치적’에 대해 자찬이 잇따랐다.

바로 이 순간 ‘선진IT 인프라’의 핵심이라 할 정부대전청사 전산망이 코드레드(Code Red) 바이러스에 감염돼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정부는 전산망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자 부랴부랴 조치에 나섰다.

행정자치부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와 정부과천청사에 “PC 또는 서버를 전산망에서 즉시 분리하라”고 긴급 통보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번 사태는 정부 부처들이 이미 열흘 전에 정보통신부가 내린 ‘긴급 경보’를 무시한 데서 비롯됐다.

8일 정통부는 허겁지겁 코드레드의 피해사례를 공개했다. 피해가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경각심을 주기 위해 공개를 결심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홍역을 치른 정부 공공기관의 명단은 한 곳도 밝히지 않았다. 컴퓨터 해커들에게 ‘보안망’이 뚫린 정부가 국민에게는 ‘보안단속’을 하고 나선 것.

정통부 관계자는 “국가정보원에서 기밀누출을 우려해 명단을 주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통부 역시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피해 상황을 ‘개인 및 기타’라는 항목에 슬쩍 포함시키는 등 ‘정부기관 감싸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대학이나 기업의 이름은 적지 않게 공개됐다. 그 기업들의 대외 신인도는 중요하지 않아서일까.

정보화는 ‘양날의 칼’과 같다. 산업화시대처럼 지나치게 성장 논리에만 치중하다 보면 인권과 윤리가 무시되고 침해될 수 있다. 정부는 ‘정보화 1등 국가’의 진정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문권모 경제부>africa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