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은 공기가 맑고 비도 자주 내리는 편이어서 부지런히 세차를 하지 않고 지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곳이다. 어떤 한국인 주재원은 차가 지저분해질 만하면 비가 내려 깨끗이 세차되는 바람에 몇 년 동안 한번도 세차한 적이 없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곳 주민들이 느닷없는 흙먼지로 골머리를 앓게 된 것은 뜻밖에도 중국에서 불어온 황사(黃砂) 때문.
USA투데이지는 중국 북부와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발생한 황사가 지난달 10일 한반도 상공을 거쳐 11일 미 서부해안에 도착한 뒤 20일 대서양 연안의 동부지역에 이른 위성사진 3장을 25일자에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황사가 태평양을 건너 미 동부지역에까지 이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그런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일반인들은 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기자의 이웃에 사는 30대 후반의 한 미국인은 “중국 황사의 피해를 워싱턴에서 겪는 것은 난생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부 미국인들은 중국 황사가 미국에까지 온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동시에 이 흙먼지가 중국에서 왔다는 사실에 짜증을 내고 있다. 가뜩이나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 충돌사고 등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은 판에 황사까지 불어 공연히 중국이 더 싫어졌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 25일자에 실린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68%는 미국내 중국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인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자신들 외에는 관심이 없으며 비즈니스에서 너무 영향력이 크다는 것 등이 이유다.
이 조사는 정찰기 사건 발생 전인 지난달 1일부터 14일까지 실시돼 최근의 반중(反中)기류는 반영하지 않고 있다. 사건 이후엔 감정이 더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요즘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그다지 곱지 않다. 시장에는 저가의 중국 상품이 넘치고 중국음식도 인기를 끌지만 이런 것이 중국에 대한 호감도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봄철의 황사는 곧 소멸되고 이번 피해도 에피소드로 남겠지만 정치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된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