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리한 주가부양 화부른다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27분


주가가 떨어질 때 대부분의 집권자들은 인위적 증시부양책에 미련을 갖게 마련이다. 주가와 정권지지도가 동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주가를 올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같은 ‘정치주가’가 일으켰던 심각한 폐해를 경험하고도 요즘 또다시 집권당과 정부가 똑같은 ‘모험’을 시도하고 있어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당정이 증시부양을 위해 작년말 세금감면 혜택의 근로자주식저축제를 도입한데 이어 또다시 소액 장기투자자에게 배당소득세를 감면해주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거액이라도 분산투자만 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 제도는 과세공평성에도 어긋나지만 가뜩이나 경기가 나빠 세수(稅收)가 불안한 판에 벌어지는 세금혜택이라는 점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작년 하반기부터 연기금의 주식투자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할 때마다 자율투자 단서를 달던 정부가 최근 노골적으로 투입시기와 투입규모까지 발표하는 것도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물론 시장이 정부의 그 같은 구두선에 속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번 연기금 투입발표 때의 주가가 잘 말해준다. 다행스러운 것은 연기금의 주체들이 장세추이를 이유로 아직도 정부의 주식시장 개입 지시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주가가 1000선까지 오르다가 800선으로 떨어졌을 때 정부가 투신사에 대해 한은 특융을 약속하면서까지 주식을 무제한으로 매입토록 했지만 결과가 어땠는지는 정부가 더 잘 안다. 아무리 사들여도 투자가들은 갖고 있던 주식을 투신사에 떠넘기고 시장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정부의 주가부양책은 실패했고 그 때 부실해진 투신사들은 지금까지 두고두고 자금시장의 부담이 되고 있다.

주가는 한마디로 경제 실상을 보여주는 성적표에 해당한다. 따라서 주가를 높이려면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경제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근원적 노력이 요구된다. 당정이 주가에 집착할수록 국민은 그들이 어려운 경제상황을 정면돌파할 자신과 능력을 갖지 못한 것으로 간주해 더 불안해하고 이로 인해 주식시장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병자의 혈색에만 집착해 붉은 단장을 한다고 해서 건강상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의 증시 투자가들이 표피적인 처방에 속아 투자를 확대할 정도로 어수룩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무리한 증시부양책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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