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용불량자 구제도 좋지만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38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개인이건 집단이건 신용은 사회생활의 기본 요건 중 하나다. 한번 신용을 잃었을 때 받아야 하는 사회적 제약은 보통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금융감독원이 추진중인 신용불량자 구제 조치는 해당자들에게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신용불량자수는 공식적인 금융기관 불량거래자만 지난달 현재 23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세금체납자 등 같은 불이익을 받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500만명에 가깝다는 것이 당국의 추산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도산과 이에 따른 대량 실업 등을 경험하면서 전국민의 10%가 넘는 인구가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무분별한 주식투자나 상습적인 체납 등으로 인한 신용불량자들도 상당수 있기는 하지만 본의 아니게 한때의 실수로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막혀 고리의 사채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많은 이들을 고려할 때 금감원의 정책추진은 바람직하다. 이들이 하루 속히 신용불량자의 족쇄를 풀고 건전한 경제인구로 환원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신용사회에서 신용은 자신의 책임 아래 지켜야 한다는 대명제를 감안할 때 구제조치에는 분명한 기준과 엄격한 제한이 있어야 한다. 그들을 제도금융권으로 끌어들이되 아울러 일정기간 사회적 불이익을 주는 선행조건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신용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 온 여타 국민과의 형평을 고려할 때 특히 강조된다. 단순한 온정주의적 ‘사면 혜택’이 신용불량자를 반복 생산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런 제재조치는 요구된다.

이번 조치에서 특히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각종 제도의 개선이다. 물론 당국이 준비하고 있는 신용카드의 발급 기준 강화와 연체액 기준의 상향조정도 중요하지만 금융기관들의 사전 경고 의무를 강화한다든지 기한 후 일정기간 내의 상환에 대해서는 은행차원에서 기록 말소의 권한을 탄력적으로 행사토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당국이 신용불량자를 제도금융권으로 흡수한다는 원칙을 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수용 여부와 수용 조건은 전적으로 은행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아울러 은행도 신용불량자들을 관용으로 대하는 자세를 갖기 바란다. 민주사회에서 실수를 용서하고 재기를 도와 사회적 혜택을 함께 누리도록 하는 것은 나머지 사람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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