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마이너스 금리의 사회상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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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고성장, 고금리’ 시대는 끝나고 마이너스의 저금리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우리 사회에 가져올 변화상, 우리보다 앞서 저금리를 경험한 일본 사회의 교훈, 달라질 금융환경에서 개인 투자자는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지 등을 5회 시리즈로 엮는다.

개인연금이 국내에 처음 도입됐던 94년 6월. 국내 보험사와 외국계 보험사가 한판 격론을 벌였다.

▼글 싣는 순서▼
① 마이너스 금리의 사회상
② 고금리시대, 영영 끝났나?
③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일본의 교훈
④ 부동산투자, 과연 대안인가?
⑤ 금융상품 틈새찾기

국내사들은 은행과의 수익률 경쟁을 의식해 연 7.5%의 확정금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계들은 “곧 저금리시대가 올 텐데 역마진이 생길 수 있다”며 맞섰다. 결국 국내사들은 유배당은 연 7.5%, 무배당은 8.5∼9.5%의 확정금리로 연금을 시장에 내놨지만 외국계의 한 보험사는 끝내 판매를 포기했다.

그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01년 4월. 금리 예측이 정확했던 외국계 P사는 국내사들이 역마진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여유 있게 바라보고 있다. 국내 대형 보험사의 한 임원은 “몇 년 전만 해도 역마진이 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금리 예측을 잘못한 일본의 대형 생보사들이 최근 몇 년새 역마진으로 하나둘 넘어지자 위기 의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올 2·4분기 명목금리는 내리고 물가는 올라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저금리에 이은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의 개막은 기업의 투자뿐만 아니라 개인의 투자, 소비의 패턴도 크게 변화시킬 전망이다. 실제

저금리는 자산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금으로 운영되는 장학재단은 투자수익이 줄면서 장학금 대상자가 줄었다고 안타까워 한다. 금융계에서도 저금리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금융상품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정한영 박사는 “‘실질금리 마이너스’시대라는 기형적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경우 어떤 방향으로 저금리가 진행될지 아직은 미지수”라고 말했다.

미국 프루덴셜보험의 국제담당 론 샤피로 이사는 “80년대 초 진행된 저금리로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몰렸고 이는 장기적으로 투자수익률의 증대와 소비를 촉진시켰다”고 설명했다.반면 일본에서의 저금리는 경제상황의 불확실성과 맞물려 소비 위축과 저축률의 증대로 연결됐다.

금융 전문가들은 2000년 말 현재 국민 1인당 평균 금융자산(약 1733만원)이 금융부채(약 636만원)보다 많은 우리의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조조정 등 경제의 불확실성이 클 때는 저금리가 일반적인 소비증가, 기업의 투자증가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득보다 실이 크다〓

최근 3대 백화점의 봄 정기세일에선 매출이 지난해보다 최고 31% 증가해 소비가 크게 늘었다. 피데스투자자문의 김한진 상무는 “저금리 상황에선 단기적으로 소비가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계의 분위기는 이와는 크게 다르다. 조흥은행 재테크팀의 서춘수 팀장은 “이자율이 최근 크게 떨어지면서 개인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추가로 연금을 가입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미래의 소득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 추가 가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금리엔 소비가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지만 경제불안으로 오히려 소비를 줄이고 있다는 것. 하나은행 재테크팀 김성엽 팀장은 “최근 만난 재일교포에게 ‘이자율이 낮은데 왜 소비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자가 많으면 왜 저축을 많이 하느냐’고 되묻더라”며 “저금리로 소비가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대박’을 쫓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시중자금이 주식시장이나 채권으로도 옮겨가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신탁이나 주식쪽에 시중자금이 반짝 몰렸지만 최근 다시 안전한 은행으로 회귀하고 있다.

삼성금융연구소의 정기영 소장은 “경제상황이 나쁘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자산 선호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우량 회사채의 금리가 연 7%대이지만 BBB+는 연 12%일 정도로 금리차가 크다”고 설명했다.

또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자금의 단기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중 MMF 약 3조3385억원, 수시입출금식 예금 1조8448억원 등 6개월 미만의 단기 예금이 6조3646억원이나 증가했다. 결국 시중자금이 기업의 산업자본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부작용마저 나타나고 있다.▽투자의 패턴이 바뀐다〓

금융기관의 금리가 떨어지면서 부동산에 자금이 몰리고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25평 이하의 작은 아파트는 월세율이 1%로 연 금리 12%에 이른다는 것.

부동산경매율이나 청약률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이 때문. 하나은행 재테크팀 김성엽 팀장은 “이미 부동산 임대업에 뛰어들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며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말했다.

높은 투자수익을 ‘약속하며’ 배당상품을 주로 팔았던 보험사들은 올 초부터 무배당상품으로 전환하고 있다. 올해 대부분의 생보사들이 배당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는 등 투자성적이 저조하자 고객들의 항의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등 일부 은행은 역연금식 상품도 선보였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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