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역사와 언론인

  • 입력 2001년 4월 6일 18시 53분


코멘트
◇우리언론 선각자들 재조명

철저한 자료고증 거쳐 언론사 객관적 정리

역사와 언론인

정진석 지음

580쪽 2만원 커뮤니케이션북스

“언제나 우리 삶을 흥분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

J. 허버트 알철(J. Herbert Altschull)은 그의 명저 ‘밀튼에서 맥루한까지’의 첫 장 제목에서 언론을 이렇게 정의했다.

17세기에서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서구 언론사는 그야말로 끊임없이 흥분을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서구에 시민계급이 있었기에 시민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면, 이 시민혁명은 맨 앞에서 싸운 언론이 있었기 때문에 위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은 서구가 그런 자랑스런 언론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의 투쟁을 하나의 몸짓으로 끝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상으로 승화시키고 나아가 제도로 정착시킨 사실을 가장 부러워해야 할 바다. 이제 우리도 우리 언론사를 객관적으로 재정리하고 언론을 이끈 언론인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진석 교수(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의 이 책은 주목할 만한 업적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세 갈래 길로 독자를 안내한다.

1부에서 저자는 철저한 자료 고증을 통해 이승만 남궁억 이종일 장지연 신채호 등의 언론활동과 언론사상을 쉽고도 유려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1부가 대로라면 2부는 오솔길이다. 2부에서 독자는 일제시대에 짝을 이뤄 언론을 이끈 인물들을 볼 수 있다. ‘만세보’를 창간해 사장과 주필을 맡은 3·1운동의 주역 오세창과 친일파 이인직이 오월동주한 경우라면, ‘동아일보’를 함께 이끈 김성수와 송진우는 머리는 다르되 몸은 하나인 쌍두마에 해당한다.

또한 안희제와 여운형은 달리기로 치자면 훌륭한 계주자였다. 안희제가 발행한 ‘중외일보’를 이어받아 여운형이 ‘조선중앙일보’로 크게 키웠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이들 외에도 연세대 교수로 함께 재직한 백낙준과 정인보가 언론을 통해 실사구시의 실학정신을 구현하고자 한 사실도 밝히고 있다.

3부에서 정 교수는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로 독자를 이끈다. 독자는 길가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잡지의 역사와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 종합잡지라고 할 수 있는 ‘소년’을 비롯해 ‘붉은 저고리’ ‘새별’ ‘아이들보이’ ‘청춘’ 등의 잡지를 발행한 최남선, 일제 하에서 가장 장수한 종합잡지 ‘삼천리’를 창간한 김동환, 광복 이후 ‘사상계’를 창간해 지식인 잡지의 새 길을 연 장준하 등의 이야기는 새로운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정치인, 독립운동가, 사상가, 또는 문인한테 언론인의 직함이 찍힌 새로운 명함을 내놓게 한 정 교수의 노고는 고마울 따름이다. 명함의 주인들을 보는 그의 시선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는 자신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그 평가를 공유하도록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여백을 남긴 그의 서술 방법은 그래서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여백을 채우는 일은 독자 자신의 몫이다.

김 민 환(고려대 교수 신문방송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