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우태/일본내 '교과서 개선운동' 돕자

  • 입력 2001년 4월 4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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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일본의 역사교과서 심의에서 문제가 됐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교과서를 포함한 8종의 교과서가 모두 검정에 통과됐다. 이 중 '새역모'의 역사 교과서가 한일합병 및 중국침략 관련부문 등 137곳을 수정해 최종 검정을 통과한 것을 보더라도 상당한 부분의 수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이 청조의 허가를 받고 조일수호조규 체결에 나섰다"는 얼토당토않은 표현은 없어지고 일본군함의 무단 측량 시위행동, 불평등조약 등의 문구를 집어넣었으며, 신청본에서는 자취를 감췄던 관동대지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런 변화는 신청본의 내용이 알려진 이후 한국과 중국에서 비등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검정을 통과해야겠다는 '새역모'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일본 불리한 내용 대부분 삭제▼

이렇게 많은 수정을 했음에도 '새역모'의 교과서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황국사관적 역사인식을 관철하고 있으며 전편에 걸쳐 극도의 국수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또 '대동아전쟁'이란 용어를 굳이 사용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과거 일본의 대외팽창과 침략전쟁에 대해서도 여전히 그 당위성을 옹호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의 실상 등 일본에 불리하거나 부정적인 사실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새역모'의 교과서가 갖고 있는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에 사용돼 온 7종의 일본 중학생용 검인정 역사교과서에 이번에 '새역모'의 것이 추가됨으로써 7종의 기존 교과서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기존의 7종 교과서는 내용상의 변화가 많지 않았지만, 종전에 비해 한국관련 서술이 30% 정도 줄었다. 1997년도판에서는 7종 교과서가 모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기술했으나 이번 개정판에서는 도쿄서적 등 5개 교과서가 종군위안부 부분을 아예 빼버렸다. 또 7종의 교과서 모두 한국과 중국 등에 대한‘침략’이라는 표현을 '진출'로 바꾸거나 삭제했다. 이는 침략 과 진출 이라는 표현을 놓고 빚어졌던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 이전으로 회귀한 셈이다.

이밖에도 이들 교과서는 중국의 난징(南京)대학살, 731부대, 간토(關東)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조선의 항일운동 등에 관한 기술도 완전히 삭제하거나 표현을 바꿨다. 이같은 축소와 후퇴에 대해 7종 교과서 출판사들은 중학교 역사시간이 주 4시간에서 주 3시간으로 축소되면서 한국 부분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고 변명하지만 '침략'을 '진출'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는 '새역모'의 새로운 교과서의 등장을 의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중학교 교과서의 전반적인 개악과 표현의 후퇴는 단지 역사 사실 서술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본사회 전반을 흐르고 있는 우익화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일본의 우익화 경향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대중의 인기에 민감한 정치권의 우익성향 발언과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으며, 도쿄(東京) 시내에서도 우익단체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집회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황국사관적 민족주의가 과거 한국에 대한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의 원천이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다행히 일본 내에는 우리와 같은 우려를 하는 많은 지식인이 존재하고 있다. 일본의 저명한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한 지식인 17명이 기자회견을 통해 우파단체인 새역모 가 검정을 신청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불합격시켜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청했으며 사학자들의 반대성명도 있었다. 이밖에도 일본의 많은 교사와 지식인 학부모 등이 새 교과서의 채택에 반대해 조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인 眞意 정확히 알려야▼

우리는 일본 내의 교과서 개선운동이 헛되지 않도록 한국인의 진의를 일본인에게 정확히 전달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번 역사교과서 파동이 오랜 기간을 통해 구축해 온 한일간의 상호이해와 우호협력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우태(서울시립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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