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이래서 명작]호르헤 이삭스의 '마리아'

입력 2001-01-19 15:55수정 2009-09-21 10:1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첫사랑!

이는 사랑받고 싶은 고귀한 자존심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받치는 달콤한 희생이며,

눈물의 대가로 받는 행복이다.

이런 사랑은 미래의 시간을 향내로 가득 차게 하고,

환멸에서도 시들지 않은 채

우리의 영혼 속에 영원토록 간직할 꽃이다."

호르헤 이삭스 Jorge Isaacs (1837-1895)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낭만주의 소설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많이 읽힌 소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진정한 낭만주의자

"요람에서 우리는 독(毒)만을 주는 허영을 빨아먹고, 세상에 나와서는 황금에 대한 갈증에 탐닉한다. 야심은 어느날 밤 갑자기 찾아와 평온했던 우리의 꿈을 교란시키고, 행복했던 가정을 파괴한다. 우리는 분별 없이 들판과 숲과 강에서 빠져나와 헛된 욕심을 쫓는다. 그러다가 욕심의 그림자 아래에서 피로에 지친 홀몸으로 후회를 하면서, 이국의 해변가 바위에서 잃어버린 행복을 그리워하며 흐느낀다. 우리 친구의 얼굴을 찾지만, 고향의 야자수와 지붕은 절대로 우리의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 낭만주의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마리아》의 작가 호르헤 이삭스가 칠레에서 영사로 근무할 때 친구 리베라에게 쓴 편지다. 이 편지의 내용대로 호르헤 이삭스는 자기의 야심을 쫓으면서도 이상적인 사랑을 노래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19세기 낭만주의자답게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정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라는 현실과 이상적인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았던 작가였고, 이상을 실현하려다가 수많은 정적을 만들어 죽어서조차 묻히고 싶었던 장소에 묻히지도 못했던 불운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맛본 좌절과 슬픔은 역으로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낭만주의 소설을 탄생시킨 동기였다.

전쟁과 문학 사이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비련의 주인공

호르헤 이삭스는 1837년 4월 1일 콜롬비아의 칼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태생의 자메이카 출신의 상인인 조지 헨리 아돌푸스였으며, 어머니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군인을 아버지로 두었던 콜롬비아 태생의 마누엘라 페레스 스카르페타였다. 이삭스는 칼리와 포파얀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후, 11살 때 로렌소 마리아 예라스가 설립한 보고타의 성령학교(Colegio del Esp ritu Santo)에 입학한다. 또한 보고타의 산부엔아벤투라와 산바르톨로메 기숙학교에서도 공부를 하지만, 학업을 마치지는 못한다. 이렇게 5년간 보고타에 머문 후, 1853년에 칼리로 돌아가 자기 소설의 주요무대로 등장하게 될 '엘 파라이소'농장에 정착한다. 그는 의학공부를 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그의 가족은 런던으로 유학을 보내려고 하지만, 경제 사정으로 인해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17살이 되던 해, 그는 정부군에 입대하여 호세 마리아 멜로 장군의 쿠데타군과 싸운다. 그리고 1956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19세의 나이로 당시 14세에 불과했던 펠리사 곤살레스 우마냐(Felisa Gonz lez Uma a)와 결혼한다. 1860년에 이삭스는 정부군 편에 서서 토마스 시프리아노 데 모스케라 장군이 이끄는 혁명군과 싸운다. 이 당시부터 그는 시를 쓰게 된다. 〈모로강〉을 비롯한 많은 시가 바로 전쟁터에서 쓰여졌던 것이다. 186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심각한 상태에 있던 농장 경영을 맡게 되지만, 경험 부족으로 경영을 개선하기는커녕 농장을 차압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1863년 말, 그는 동생 알시데스에게 농장 경영을 맡기고 보고타로 이사한다. 그리고 1864년에는 30여명의 채권자가 이삭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라마누엘리타'와 '산타 리타' 농장이 경매에 붙여지고, 미국인 제임스 에더가 시가의 2/3 가격으로 구입한다. 〈마리아〉의 무대가 된 '엘 파라이소' 농장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이미 팔린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그는 〈엘모사이코〉라는 문학 그룹에 참여한다. 1864년 5월에 이삭스는 〈엘모사이코〉 멤버들 앞에서 자신의 시를 낭독하고, 이 그룹은 이삭스의 시를 출판한다. 이 그룹은 이삭스의 문학 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의 예술관은 〈엘모사이코〉 그룹의 현실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당시의 관습과 여행기록 및 과학 정신에 바탕을 둔 이야기와 그 지역을 자세히 묘사하는 태도가 바로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이다.

1864년 11월, 이삭스는 칼리와 부엔아벤투라를 연결하는 도로 공사의 책임자로 일하지만, 정글에서의 비위생적인 삶 때문에 말라리아에 걸리게 된다. 다과 강변에 설치된 임시 숙소에서 건강을 회복하면서, 이삭스는 〈마리아〉를 쓰기 시작한다. 1865년 말에 칼리에서 그는 이 작품의 초고를 완성하고, 문법 선생이었던 동생과 보고타의 문인들에게 작품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이 작품은 1867년에 800부가 발행되면서 일반인에게 선을 보인다.

1866년 카우카 주의 보수당은 이삭스를 국회의원으로 지명한다. 그래서 다시 보고타에 있게 된 그는 정치활동과 병행하여 수입옷 가게를 연다. 또한 신문 《라 레푸블리카》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다른 신문에도 문학과 관련된 글을 발표한다. 1869년 의원 임기가 끝나지만, 하원의장직을 맡으면서 1년간 더 보고타에 머무른다. 이 당시 그는 보수당에 환멸을 느끼고 자유당의 급진파에 관심을 보이면서, 프리메이슨에 가담하였다. 이 일로 그는 후에 콜롬비아 대통령이 될 안토니오 카로의 미움을 산다.

1870년에 이삭스는 칠레 주재 콜롬비아 대사관 영사로 임명되어 1872년 말까지 근무한다. 1873년에 귀국한 그는 팔미라 근처에 '과야보네그로'라는 농장을 구입한다. 카우카 주의 철도 건설로 농장가격이 단기간에 크게 상승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대부를 받아 구입하지만, 결국 1년 반 만에 그는 파산하고 만다.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1878년에 이 농장을 팔지만, 부채 때문에 그는 1880년까지 곤란을 겪게 된다. 이런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1876년에 보수당이 반란을 일으키자, 자유당의 편을 들면서 창코스(Chancos) 전투에 참가한다. 그는 치열했던 창코스 전투에 대위로 참가하여 두각을 나타난다. 이듬해에는 카우카 주의 주지사로 임명되고, 자유당 혁명군의 선봉에 서서 안티오키아 주를 침략하여, 그곳 주지사를 파면하고, 그 지역의 주지사 업무를 책임진다. 그러나 얼마 후 군대에 포위되어 항복문서에 서명한다.

1881년에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훌리오 로카 장군에게 바치는 사울로의 노래를 출판한다. 그해 9월에 대서양 연안의 미개발지역 광물 탐사 연구위원으로 임명되는데, 이것은 아구스틴 코다찌가 죽으면서 중단된 지방지형도 작성을 계속하는 작업이었다. 이 위원회는 일련의 국내 정세로 인해 해체되지만, 이삭스는 단 한 명의 조수를 데리고 과히라와 시에라 네바다 지역으로 탐사를 떠나고, 1년간의 연구 끝에 1884년에 〈막달레나 주의 원주민 부족에 관한 연구〉라는 글을 쓴다. 이 연구는 원주민들의 어휘와 문법 및 전통과 종교와 암석화에 관한 훌륭한 글이었지만, 1887년에 와서야 비로소 공개된다. 그리고 아라카타가 근처에서 석탄 광맥을 발견한다.

1885년 내전 동안, 이삭스는 라파엘 누네스 정부에 반기를 든 반란군 편을 들지만, 전쟁이 끝나자 누네스의 보복을 두려워한 그는 푸사가수가로 피신한다. 1886년, 이삭스는 1881년에 발견한 대서양변의 석탄 채굴 독점권을 인정받고, 이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찾는다. 그러면서 리오아차와 산타마르타 근처를 탐사하다가 또 다른 석탄 광산을 발견한다. 그러나 필요한 자본을 구하지 못하게 되어, 채굴 독점권 연장을 요청하지만, 그의 건강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와 있었다.

1893년 자기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한 이삭스는 남은 힘을 문학 창작에 쏟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면서 《마리아》보다 더 심금을 울릴 《타니아》와 '검은 영혼'이라고 불리는《카밀로》와《솔레다드》로 구성된 3부작 역사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리아》로 이룰 수 없었던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 그러나 1895년 말라리아가 재발하면서, 58세의 나이로 이바게에서 가족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한 많은 세상을 떠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에프라인은 마리아를 만나자, 마리아에게서 자기가 꿈꿔오던 이상형의 여인상을 발견하게 되고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마리아도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한 미래는 마리아의 병으로 위협받게 된다. 똑같은 병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는 그와 그녀 사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5년 동안은 결혼할 수 없도록 한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 데려온 의사는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이 그녀의 어머니가 앓았던 병이 아니라고 말해 에프라인은 안심한다.

아버지의 말 때문에 고민하던 에프라인은 친구인 카를로스가 마리아에게 청혼한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방황하게 된다. 하지만 마리아는 현명하게 모든 일에 대처했고, 이런 모든 어려움으로 그들은 서로의 깊은 사랑을 확인하면서 결혼을 약속하지만......

The more

◇글쓴이 송병선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거미여인의 키스'와 '여인들의 유희'에 나타난 상호텍스트성 연구〉로 콜롬비아의 하베리아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와 덕성여대, 단국대 등에 출강하며, 문학평론가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모래의 책》, 《거미여인의 키스》, 《꿈을 빌려드립니다》, 《붐: 중남미 대표 소설집》 《탱고: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 선집》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이 있다.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