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통화를 풀고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쓴다. 이 때문에 경기순환이 대통령 임기와 비슷해져 정치적 경기변동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린스펀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정치적 경기변동에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정치적 중립의 공로를 인정받았던지 그는 클린턴에 의해서도 두 번이나 재임명을 받았다. 이러한 악연에도 불구하고 부시 당선자는 당선 확정 직후 워싱턴에 올라와 첫 번째로 그린스펀을 만나 ‘훌륭한 사람과 경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의 장기 호황을 이끌어낸 그린스펀에 대한 미국 조야의 찬사는 더없이 극진하다. 예비선거에서 부시당선자와 겨뤘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만일 그린스펀이 죽으면 책상에 시신을 기대놓고 선글라스를 씌워 FRB 의장으로 재임명하겠다”고 말할 정도. ‘전지전능한 그린스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FRB 의장의 권위가 이렇게 절대적이다보니 투자자들 사이에는 주가가 떨어지면 끌어올려 주겠거니 하는 ‘그린스펀형 모럴 해저드’까지 생겨났다.
▷한국에서는 주무 장관이 ‘절대로 없다’고 하면 절대로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공적자금 추가 투입은 없다더니 장관을 바꾸고 공적자금을 조성했다. 감자(減資)가 없다던 거듭된 약속도 공수표가 됐다. 이런 판이라 정부와 연구기관이 아무리 군불을 때도 증권시장이나 소비심리가 살아날 줄 모른다. 경제에는 군중 심리학적 요소가 다분히 있다. ‘전지전능한’ 경제관료가 없는 것도 한국 경제의 취약 요인이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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