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전지전능한 그린스펀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8시 12분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돼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재임명된 공화당 출신이지만 공화당과 부시가(家)에 큰 죄를 지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의 승리로 치솟던 인기에도 불구하고 1992년 재선에 실패했다. 그린스펀 의장이 90, 91년 불경기에 금리를 너무 천천히 내려 경기회복을 지연시킴으로써 클린턴에 승리를 안겨주었다는 불만이 공화당에서 터져나왔다.

▷미국 행정부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통화를 풀고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쓴다. 이 때문에 경기순환이 대통령 임기와 비슷해져 정치적 경기변동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린스펀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정치적 경기변동에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정치적 중립의 공로를 인정받았던지 그는 클린턴에 의해서도 두 번이나 재임명을 받았다. 이러한 악연에도 불구하고 부시 당선자는 당선 확정 직후 워싱턴에 올라와 첫 번째로 그린스펀을 만나 ‘훌륭한 사람과 경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의 장기 호황을 이끌어낸 그린스펀에 대한 미국 조야의 찬사는 더없이 극진하다. 예비선거에서 부시당선자와 겨뤘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만일 그린스펀이 죽으면 책상에 시신을 기대놓고 선글라스를 씌워 FRB 의장으로 재임명하겠다”고 말할 정도. ‘전지전능한 그린스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FRB 의장의 권위가 이렇게 절대적이다보니 투자자들 사이에는 주가가 떨어지면 끌어올려 주겠거니 하는 ‘그린스펀형 모럴 해저드’까지 생겨났다.

▷한국에서는 주무 장관이 ‘절대로 없다’고 하면 절대로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공적자금 추가 투입은 없다더니 장관을 바꾸고 공적자금을 조성했다. 감자(減資)가 없다던 거듭된 약속도 공수표가 됐다. 이런 판이라 정부와 연구기관이 아무리 군불을 때도 증권시장이나 소비심리가 살아날 줄 모른다. 경제에는 군중 심리학적 요소가 다분히 있다. ‘전지전능한’ 경제관료가 없는 것도 한국 경제의 취약 요인이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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