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인기영합정책 나라가 멍든다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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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뚜렷한 원칙과 경제논리보다 그때그때 이해집단의 인기에 영합하는 경제정책을 쏟아낸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같은 인기위주의 ‘포퓰리즘(populism)적 경제처방’은 현실경제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의 뿌리를 흔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 선심성 정책이 남발되면 재정적자가 불어나고 근로의욕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정부는 물론 정치권, 기업 및 노동계, 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고통없이 미래없다’는 각오로 우선 단맛을 주는 인기영합적 정책을 경계해야 한다”는 고언(苦言)을 던지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한빛은행 등 6개 은행의 완전감자(減資)결정과 관련해 19일 국무회의에서 “소액주주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다”며 대책강구를 지시한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발상으로 꼽힌다.

강신우(姜信祐) 템플턴투신운용 상무는 “은행감자와 관련해 말을 바꾼 정책당국자의 책임추궁은 몰라도 투자자들이 돈을 물어내라고 요구하자 정부가 추가지원책을 검토하는 것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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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구조조정과 고용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다는 식으로 ‘선전’해온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인기영합적 처방.

김태기(金兌基·경제학) 단국대교수는 “정부가 4·13총선을 앞두고 ‘IMF위기 졸업론’ 등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사회분위기가 흐트러져 구조조정 실패의 큰 원인이 됐다”고 진단한다.

구조조정은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진실을 설득하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지적이다.

김기원(金基元·경제학) 방송통신대교수는 “정부가 현대투신의 한남투신 인수를 강권해 연쇄부실로 이어지게 한 것이나 대우 워크아웃 당시 투신고객들에 대한 원리금 지급 등 ‘목소리 큰 일부 대중’의 인기를 의식한 정책이 많았다”며 “이런 정책으로 국민 전체에 돌아가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1·3 기업퇴출에서 실제보다 퇴출대상 부실기업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다”며 “청산돼야 할 기업이 금융지원을 받으며 존속할 경우 신용경색이 지속되고 건실한 경쟁업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최영기(崔榮起)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노동문제와 관련, “공기업 구조조정에서 정치권의 부당한 청탁과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지 않고 인원감축에만 치중해 노동계의 반발을 샀고 공기업이나 은행파업 위기가 닥치면 임시변통으로 상황을 넘기는 데만 급급했다”고 말한다.

이밖에 기초생활보장제 도입에 따라 일하지 않고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최저생계비가 근로자 최저임금보다 높아진 모순이나 수시로 되풀이되는 농어촌부채 탕감에 따른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서병훈(徐炳勳·정치학) 숭실대교수는 “일시적 인기에 급급한 포퓰리즘적 경제정책은 당장에는 달콤해 보이지만 결국 두고두고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가며 특히 남미의 교훈에서 보면 한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최도성(崔道成·경영학) 서울대교수는 “포퓰리즘에 의존하다 보니 감당하지 못할 약속을 너무 많이 하게 되고 계속 말을 바꾸게 된다”며 “지도자는 ‘선거에 지더라도’ ‘정권재창출을 못해도’ 나라를 살리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장관 및 관료들은 원칙에 어긋나는 지시가 내려오면 자리를 걸고 항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종석(芮鍾碩·경영학) 한양대교수도 “정치인들이 책임감이 없고 마치 ‘평론가’처럼 말을 뱉어내고 장관들도 대통령 눈치만 보고 소신껏 일을 하지 않는다”며 “현정권이 정권 재창출에 연연하지 말고 대국적으로 정국을 운영해야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퓰리즘▼

한때 ‘민중주의’로 번역되기도 했으나 잘못된 번역이라는 것이 최근 학계의 정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개혁을 주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권력을 획득하고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인기영합’과 ‘실체와 원칙이 없는 개혁’이 두가지 특징이라는 것.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부가 선심성 정책을 펼쳐 국가경제를 망치게 한 것이 포퓰리즘의 대표적 폐해 사례로 꼽힌다.

<권순활·최영해·정용관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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